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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후기 결말

 쫀나의 영화 리뷰 

[넷플릭스 한국 영화 추천 대도시의 사랑법 후기 결말 정보]

빛이 나는 김고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김고은의 영화다. 

그리고 

이게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자 한계점이다. 

개봉 당시 영화가 좋다는 소문이 들리긴 하였으나 극장에 갈만큼 매력적인 영화는 아니었고 넷플릭스를 통해서 늦게서야 보게 되었는데 이런 나의 섣부른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을 뿐이다. 사실 극장까지 가서 본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보다는 더 나은 완성도와 재미를 제공해 주었으면 어떠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긴 한다. 

나는 박상영 작가의 원작 소설도 읽어 보았고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도 보았던 사람으로 

영화를 평가하자면 내가 안 좋게 평가했던 드라마보다도 오히려 박하게 평가할 수 밖에 없는 게 바로 이 영화 버전이다. 소설은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드라마는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소설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한 바를 충실히 전달하고자 애를 쓴 흔적은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재희라는 인물에 방점이 찍히면서 다소 어정쩡한 이야기가 된다. 다만 우리 나라에서 동성애자들이 받는 시선을 생각해 본다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동성애 소재 영화가 정말 전혀 안 먹힌다고 생각하기에는 영화 왕의 남자의 엄청난 흥행을 두고 두고 떠올리게 된다. 

왕의 남자 역시 대놓고 남자들의 사랑을 다룬 영화였다.

그것도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누구나 불편한 감정을 느낄 만한 소재이고 들리는 말로는 영화 초기 시사회 이후 이 영화는 무조건 망할 거라고 예상한 영화인들이 정말 많았지만 지금처럼 멀티 플렉스 영화관이 일반적인 시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소문 만으로도 천 이백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오히려 지금 천만 돌파보다 그 당시 천만 돌파는 더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고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나라 관객들은 동성애 소재에 있어서는 경기를 일으킨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영화 왕의 남자는 그러면 어떻게 설명할 건지 물어 보고 싶다. 

문제는 게이나 동성애가 아니다.

소재가 어떻든 간에 관객들을 얼마나 설득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곡성같은 영화도 몇 백만 관객이 드는 게 우리 나라다. 우리 나라 관객들의 수준을 무시하지 말기 바란다. 영화 서브스턴스가 40만을 돌파하는 나라가 전세계에 어디 있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초반에 동성애 소재가 아닌 것처럼 홍보를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나는 이 역시도 조금 치사한 방법이라고 생각 한다. 이건 관객을 속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포일러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영화의 소재가 정확히 무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러하기에 

전혀 모르고 가서 이 영화를 가서 보는 사람들은 노상현과 김고은의 사랑 이야기라고 짐작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관객들을 속여서 과연 얻는 게 무엇인가. 영화의 빈약한 완성도를 마케팅으로 무마하려는 시도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영화의 완성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영화는 재미있어야 관객의 선택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사실 재미있는 영화라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자유분방한 재희와 소심한 흥수의 우정 이야기가 핵심 내용일 지언대 그 우정 이야기도 식상하기 그지없다. 이들의 이야기가 특별하다거나 생소하지도 않다. 그 동안 미국 드라마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온 게이와 헤테로 여성의 관계성이 아니던가. 

특히 김고은에 비해 노상현의 존재감과 연기력은 두고두고 아쉽다. 

사람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지만 나는 배우 만큼은 스스로를 어느 정도는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배우 남윤수는 그래도 드라마 안에서 정말 게이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존경의 마음이 들 정도다. 하지만 노상현은 영화 안에서 단 한 번도 게이처럼 보이는 순간이 없다. 

연기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흥수 캐릭터와 찰떡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애매하게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며 흥수라는 캐릭터를 소화하는 건 지켜보는 관객에게도 힘든 일이다. 어차피 영화의 흥행은 김고은 덕분에 확보가 된 부분이라면 흥수 캐릭터는 아예 연기력이나 존재감만을 고려해서 신인 배우로 갔으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 노상현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다 보니 어차피 마케팅 포인트로 잡기 어렵고 영화 자체도 재희에게 무게 중심이 많이 옮겨가 있으니 흥수 만이라도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하는 남자 배우를 캐스팅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노출이나 수위가 높은 장면도 없을 터라 신인 남자 배우들이 분명 관심을 가졌을 거 같은데 왜 애매한 인지도의 노상현을 굳이 선택한 건지 이해가 안 간다. 

한국 영화에서 다소 파격적인 캐릭터가 바로 흥수인 만큼 그리고 김고은이 이 정도로 비중을 많이 차지할 거라면 흥수 캐릭터 만큼은 기깔나게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 맡았어야 했다. 아마 그렇게 대놓고 게이 티가 팍팍 나는 사람을 캐스팅 했다면 오히려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게이 캐릭터를 다룬 영화를 이 정도로 무미건조하게 만든 건 그래서 크게 의미가 없다. 차라리 아예 안 만들었으면 안 만들었지 재희 캐릭터를 이 정도로 키우고 할 건 아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노상형은 비단 매력적인 배우이긴 하지만 영화와 캐릭터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리고 

영화 자체의 제작비가 생각보다 높은데 보다 보면 쓸데 없이 돈을 쓴 장면들이 눈에 들어 온다. 차라리 저예산 영화로 가고 제작비를 좀 줄이면서 손익분기점을 한참 낮췄어야 하지 않나 싶다. 차라리 연극 느낌으로 찍으면서 불필요한 캐릭터나 장면들을 줄였다면 오히려 흥행을 하지 않았을까. 

영화적으로 저 장면이 꼭 필요했나 싶은 부분이 아마추어인 내가 보기에도 존재해서 쓸데없이 돈을 썼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래서 영화는 감독을 제어할 프로듀서의 존재감이 절실하다. 

이런 소재의 영화에 왜 이 정도의 높은 제작비가 필요한 건지 이해가 조금 안 간다. 

그리고 작위적인 장면들도 상당히 많이 나와서 거슬리는데 특히 흥수와 재희의 우정을 확인하는 파출소 장면에서 술 취한 남자들이 갑자기 박수를 치는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마지막 결혼식 장면도 나는 크게 감동을 받지 않았고 결말을 그런 식으로 내면서 영화의 중심이 너무 재희에게 쏠려 있다는 걸 다시금 확인 사살 받는 기분이라 무언가 언짢기도 했다.

이 영화는 그냥 재희의 영화구나.

소설이나 드라마를 생각하면 좀 어이가 없긴 한데 영화의 흥행을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는 비겁한 변명은 사실 듣고 싶지 않다. 그럴 거라면 왜 굳이 만들어야 했을까.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의 핵심은 흥수라는 캐릭터에 있는데 김고은의 신들린 연기력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과연 내가 이 영화에서 김고은의 매력을 보고 싶었을까. 

영화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도 있는데 영화 흥행에 관련 한 마디 하자면 이 영화는 게이가 주인공이라 실패한 게 아니라 이도저도 아닌 재미와 한참 떨어지는 완성도 때문에 망한 거라고 할 수 있다. 다들 잊으셨나 본데 한국 관객들 수준 생각보다 굉장히 높다. 

기대를 안 했는데도 

여러모로 실망스럽다. 

정말이지 김고은을 제외하면 장점을 찾기 힘든 영화였다. 

나는 드라마 버전도 별로였는데 영화에 비하면 선녀라는 걸 확인하면서 

씁쓸한 기분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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