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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피아노 레슨 후기

 의미 찾다가 재미를 잃다 

나 혼자 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영화는 예술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없다.

적어도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예술과 상업을 같이 가지고 가던가 아니면 상업적인 면모를 잃어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르덴 형제나 봉준호 감독 영화를 좋아한다. 예술적인 경지에 다다른 작품이지만 일반 대중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재미있다.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이 초반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되지 못한 이유가 너무 상업적이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칸 심사위원들이 어떠한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그 경계에 선 영화들을 좋아 한다. 아무리 예술을 한다고 해도 지루하면 그 순간부터 최악의 영화로 남는다.

무수히 많은 영화 감독들이 예술 한 번 해보겠다고 덤벼 들지만 제대로 성공한 사람이 없다. 제대로 된 상업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다른 차원으로 가야할 예술 영화를 잘 만드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마블이나 DC 영화 같은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건 또 아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은 내 인생 최악의 영화 중 하나로 꼽을 정도이며 며칠 전에 본 뮤지컬 영화 위키드 역시 너무 지루해서 영화 보는 내내 하품을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상업이나 예술 영화로 가르는 거 자체가 크게 의미가 없다.

결국은 내가 시간 낭비라고 느끼지 않을 만큼 재미를 제공해 주느냐 아니냐로 귀결된다. 어떻게든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대놓고 상업 영화라고 해서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없다. 나는 그렇게 남들이 극찬하는 영화인 듄도 너무 지루해서 하품을 하느라 눈물이 고일 정도였던 터라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영화 피아노 레슨이 딱 그러했다.

그런데 피아노 레슨은 내가 싫어하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존 데이비드 워싱턴. 

배우 덴젤 워싱턴의 아들로 외모는 크게 닮지 않은 사람인데 말 그대로 금수저 영향이 있어서 그런지 의외로 큰 영화에 자주 나오는 흑인 배우 중 한 명이다. 윌 스미스를 이을 만한 스타 배우라고 하기에는 경력이 비루하기 그지없으나 연기력이 나쁘진 않아서 굵직한 필모를 자랑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연기를 잘 하는 건지 진심 모르겠어서 볼 때마다 당황스럽다. 

기본기가 있는 건 맞으나 표정 변화가 항상 동일하고 나 연기하고 있다는 톤이 참아 주기 어렵다. 영화 피아노 레슨에서도 어마무시한 대사를 소화하면서 연기를 이어 나가는데 이게 자연스러워 보이지가 않아서 불편했다. 영화에 집중을 하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혼자 튀는 터라 조화롭지도 않다. 

영화 자체도 크게 재미가 없는데 싫어하는 배우가 나와서 혼자 영화를 장악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는 건 아무래도 괴롭다. 원래 흑인들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미국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편견이라기 보다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범주를 넘어선 차원의 이야기이기에 제대로 공감하고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미국 흑인들은 보통의 이민자들이 상상하기 힘든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도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이 동양인들에게 있는데 아프리카인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짐바브웨에서 왔는지 에티오피아에서 왔는지 알 길이 없다. 그만큼 노예선으로 무작위하게 실어 왔기 때문에 그러하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비참한 역사는 그러한 역사를 겪고 있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보다 더 넓은 대중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더 친절하고 쉬운 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영화 피아노 레슨은 좀 아쉬운 영화이기는 하다. 

잔잔하고 조용하게 진행되는 영화로 하품을 참을 수 있다면 추천하고 싶다. 

평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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