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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랏 속편 후기

 멍청한 사람들에게 돌려 말하는 지혜로운 방법 

사샤 바론 코센은 외모 덕분에 국적이 의심이 가긴 하는데 실제로는 영국 국적의 유대인이다. 

2006년에 공개가 되어 전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보랏 1 편 이후로 14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온 이 영화는 역시나 대단한 풍자를 보여준다. 이번에는 딸 역할로 배우 마리아 바칼로바가 합류하는데 오스카 여우조연상에 올랐을 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큐멘터리 장르로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섞인 영화라고 보면 되는데 마지막 장면의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의 추태는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정도 몰래 카메라 라면 우리 나라에서는 영화로 공개도 되지 못했을 텐데 확실히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 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이클 펜스 부통령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어지는 모습 역시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이 영화가 공개가 될 당시만 해도 트럼프는 물러나고 바이든이 되면서 무언가 바뀔 거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이제 바로 이어질 대선 앞에서 또 다시 트럼프가 당선이 될 게 거의 확실한 상황이라 이 모든 게 참 아이러니하다.

냉정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멍청해서 라기 보다는 민주당이나 바이든이나 서민들의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미국이 불을 지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과의 사이도 좋지 않은 마당에 러시아 전쟁까지 벌어지다 보니 물가는 당연히 오르게 되었고 당연한 결과로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은트럼프 집권 때보다 훨씬 더 안 좋아지고 있다. 

임금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물가와 특히 월세의 급격한 인상은 임금 인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다시 트럼프를 지지하는 걸 그들이 무식하다는 식으로 나무라는 건 내가 봐도 충분히 억울할 만하다. 특히 미국처럼 닫힌 사회에서 서민들은 시급에 의존하기 마련이고 물가 인상에 직격탄을 입는다. 

아무리 공화당 지지자들이 낙태를 반대하고 힐러리가 아이들의 피를 마신다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나무라는 건 너무 소극적인 태도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이들이 왜 힐러리가 아이들의 피를 마신다는 사실 자체를 너무나 쉽게 믿는 이유를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어찌 보면 민주당은 지금까지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고수해 왔다. 알게 모르게 부자들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이들에게만 자금을 지원해 주면서 정작 서민들의 삶은 더욱 더 힘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놀라운 건 트럼프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나마 민주당이 조금 더 나은 수준인데 조금 더 나은 수준으로는 사람들이 트럼프에게 귀속되는 걸 막기 어렵다. 보다 더 혁신적인 방법으로 서민들의 삶을 개선해 나가지 않는다면 제 2의 트럼프가 계속 등장하는 걸 막기 어렵고 그렇게 되면 미국의 전체적인 경제나 미래 역시 불안해진다. 

공화당 지지자들 눈에는 힐러리가 아이들의 피를 마시듯이 자신들의 피를 빨리고 있다고 느낀다. 그게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이다. 원래 경제가 어려우면 지도자를 탓하기 마련이다. 근본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제일 악당이긴 하지만 이 사태를 초래하고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미국에 대한 원망이 커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보기 싫은 이민자들은 민주당 집권 이후 늘어나고 있다. 바이든 정부 때에도 이민자들에게 문을 열어준 건 아니지만 트럼프 행정부 만큼이나 강력하게 막지는 않는다. 

모든 게 다 이민자 탓이라는 정서가 생길만도 하다. 

펜스 부통령이나 줄리아니를 보면 공화당 정치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치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애초에 공약을 지키는 정치인도 거의 없는 상황인데 트럼프는 지키지 않아도 될 공약들은 철저하게 지키며 자신을 홍보한다. 홍보 전략 만큼은 기가 막힌 사람이다. 이번에도 해리스가 될 수도 있다고 호들갑을 떠는 언론들이 있는데 미국 대통령 자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기에 무난하게 트럼프가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게 멍청한 공화당 지지자들 탓인가.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이들의 주머니를 더 얇게 만들고 있는 민주당의 탓도 크다. 오히려 이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만하다. 애초에 일반 서민들은 기본적으로 멍청하고 배만 부르면 크게 정치에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50달러를 가지고 장을 보러 가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점점 더 줄어든다면 그 뒤에 숨겨진 이런 저런 복잡한 논리를 떠올리기 보다는 지도자와 여당을 탓하는 게 인간의 기본 심리다. 

보랏 속편에 나오는 풍자도 이해가 가고 공화당 지지자들이 유별나게 멍청한 것도 사실이지만 멍청하고 똑똑하고를 떠나서 모두가 기본 이상의 수입을 보장해주고 평범하게 살아가게 만들지 않는다면 어느 정권이나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트럼프가 재선을 한다고 해서 미국 경제가 더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으나 일반 시민들의 인식은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만 해도 경제 발전을 이룩한 전 대통령의 딸이 지도자가 되면 부자가 되고 잘 살 거라는 착각에 빠진 적이 있지 않았나.

그 이후에는 대기업을 이끈 수장이라면 경제가 더 좋아질 거라고 그리고 그 이후에는 집값을 높게 유지하면 모든 경제가 돌아갈 거라고 착각하지 않았나. 정치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무엇을 희망하고 믿으려고 하는지가 더 중요한 법이다. 이걸 놓치면 정치에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보랏의 풍자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이를 보고 깔깔 웃기만 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아마 평생 가도록 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지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할 거다. 엘리트 계층이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들처럼 배고 고프다는 실존적인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낙태 금지 보다 더 급한 게 당장 내일 먹을 문제이기 때문이다. 

총평

풍자는 재미있으나 그래서 뭐?

평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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