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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2022 리뷰 결말

 쫀나의 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추천 서부 전선 이상 없다 2022 후기 리뷰 결말 

아무 의미 없이 죽어간 소년들 


소설을 원작으로 이미 영화로 세 번이나 만들어진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최근 할리우드 전쟁 영화들이 거의 대부분 볼거리가 많은 세계 2차 대전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1차 대전 배경 영화들도 은근히 많이 나오고 있다. 영화 1917도 그러한 영화였고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역시 같은 배경을 다루고 있다. 물론 독일 관점이라는 측면에서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근본을 달리한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만들어지는 전쟁 영화에서 주인공을 독일인으로 만드는 건 정신 나간 짓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워낙에 삐딱한 사람이기에 가해자인 독일의 입장도 조금 궁금하긴 했다. 아니 지도부의 입장보다는 명령을 받아 싸우는 독일 군인들은 대체 어떠한 기분이었을까.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영화는 일부나마 답해준다. 

얼굴에 솜털이 날 정도로 어린 십대 소년들은 정부의 선전에 취해 군대에 입대한다. 당시에는 정보가 지금처럼 투명하지 않았고, 정부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이 많은 시절이었다. 지금도 일부 어른들은 TV에서 나온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었다가 돈을 뜯기는 사례가 의외로 많았다. 어린 시절에는 저렇게나 쉽게 속는 노인 분들이 이해가 안 갔는데 정보가 없고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은 그만큼 판단 기준으로 삼을 만한 게 별로 없기 때문에 그 틈을 파고든 사기꾼들이 작정하고 속이려고 들면 피하기 어렵다. 

1910년대 후반 독일의 청소년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주인공 파울 역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지 친구들과 함께 입대하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서부 전선으로 향한다. 전쟁에 참전하는 게 이렇게나 간단하게 진행되냐고 반문해 볼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부모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 확인할 것도 아니고 그 당시라면 파울같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을 거다. 

특히 파울이 전쟁 선전 부장의 말에 열광적으로 반응을 하는 걸 보면서 전쟁의 실체를 알 리 없는 십대 소년들을 전쟁에 내보낸 것부터가 소름끼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지만 그래도 하나의 잘못이 있다면 세상 물정은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거다. 그렇게 파울과 네 명의 친구들은 의미도 없고 희망도 없는 서부 전선으로 내몰린다. 

가장 먼저 희생되는 건 죽음을 그 누구보다 두려워한 친구였다. 

죽기 직전까지 죽음을 눈앞에 두고 경기를 일으키던 친구는 서부 전선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시체로 발견되었고 이를 발견한 파울은 극심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에 앉아 울기만 할 수는 없다. 당장 내 목숨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친구의 죽음 앞에서 충격을 받을 시간 자체가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파울은 같이 온 친구들을 비롯해 서부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군인들과 친구가 된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아내와 자식까지 있는 카트는 파울에게 있어서는 형같은 존재다. 이 험한 전쟁에서 오래도록 살아 남은 만큼 배울 점도 많고 프랑스 농가의 오뢰 설이도 같이 할 정도로 신뢰가 두터운 사이다. 

파울의 나이도 십대지만 카트의 나이 역시 20대 후반 정도일 거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 지금으로치면 아직도 부모와 사는 나이로 둘 다 소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카트는 글을 읽지 못하기에 파울은 카트에게 부인으로부터 온 편지를 읽어 주며 더욱 더 친해진다. 이 둘의 관계는 마치 형제와 같고 그래서 이 둘 만큼은 꼭 끝까지 살아있어 주기를 바라게 된다. 

이런 나의 소망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고 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전투 장면을 보면 저 안에서 살아 남은 카트와 파울이 대단해 보인다기 보다는 그저 운이 좋았구나 싶다. 조금만 옆으로 뛰었거나 조금이라도 삐끗해서 넘어졌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팔이나 다리 한 쪽을 잃었을 게 틀림없다. 파울과 카트가 그래도 휴전까지 살아 남은 건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착각한다. 

내가 잘 하면 전쟁터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전쟁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올림픽이나 국제 경기처럼 규칙과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체급 따위도 없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온갖 규칙이 난무하는 경기에서도 운이 많이 작용하는 마당에 아수라장과같은 전쟁터에서 실력과 체력이 자신의 생존을 보장해 줄 리가 없다. 

그렇다고 탈영을 할 수도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전쟁 중에 탈영은 사형감이다. 그러니 파울을 비롯한 어린 군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 이미 독일이 전쟁에서 질 거라는 게 뻔한 상황에서도 지도층들은 굽힐 줄을 모른다. 자신들은 전쟁터에서 피 한 방울 흘려보지 않았지만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의 목숨은 파리보다도 못하다. 

아마 저런 사고 방식이니 전쟁을 하고 유지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나도 군대를 다녀왔지만 생각보다 우리 나라의 군대는 돌아가는 방식이 개판이긴 하다. 어린 마음에도 이 상황에서 전쟁이 나면 정말 오합지졸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 나라는 분단 국가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과 전쟁을 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전문가들도 오히려 중국과 전쟁을 하면 했지 북한과의 전쟁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만약 전쟁을 한다면 아마도 어리고 힘 없고 돈없는 서민층의 자제들이 동원될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의 전쟁 역시 항상 그래왔기 때문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도 러시아에서 서민층의 자제들은 거의 다 전쟁에 동원 되었지만 권력자들과 재벌들의 자녀들은 거의 다 중동 국가로 도망간 건 유명한 일화다. 

그래서 나는 파울의 얼굴이 참 좋았다.

싸구려 할리우드 영화처럼 일부러 잘 생긴 배우를 선택하지 않은 게 더 마음에 들었다. 파울같은 얼굴은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로 마치 그 시대의 십대 소년의 상징과도 같다. 그리고 파울의 얼굴과 표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흑빛으로 변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너무나 많은 죽음을 겪다 보면 정신이 피폐해질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집안 어르신 중에 625 전쟁과 월남 전쟁을 겪으신 분이 있는데 남들과는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계셨고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전쟁 트라우마로 평생을 고생하며 결국 숨을 거두셨다. 전쟁의 상흔은 약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아마 내가 전쟁에 나가서 파울과 같은 고통을 겪었다면 나는 아마 죽기 전에 정신이 나가 버리지 않았을까. 

그렇게 소모적인 전쟁이 드디어 휴전을 하고 집에 가는 날만 기다리던 군인들은 마지막 1분 전까지 다시 한 번 싸우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다시 한 번 전투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파울은 휴전하기 직전 숨을 거둔다. 어차피 그의 운명 역시 정해진 터였다. 전쟁에서는 그 누구도 살아나가기 어렵다. 설령 목숨을 건진다고 해도 그 트라우마로 인해 평생을 고통 받으며 지낼 수 밖에 없다. 

웃픈 점은 저렇게 휴전하고 독일이 20년이 지나 또 한 번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아마 전쟁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전쟁을 나가보지 않았거나 아니면 운 좋게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었을 거다. 이미 전쟁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전쟁에서 다 죽어 버렸으니 히틀러가 당시 독일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얻은 것도 이해가 간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도 양상이 다르지 않다. 

결국 희생되는 건 돈 없고 힘 없고 권력 없는 서민들이다. 우크라이나는 거의 절반의 남자들이 죽거나 나라를 떠났다. 전쟁이 일어나기 열흘 전까지만 해도 틱톡에서 춤을 추며 즐거워하던 소년들이 전쟁터에 나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는 세상이다. 젤린스키가 지금 비판을 받는 건 우크라이나 영토를 지키려는 대의보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욕심이 더 앞섰기 때문이다. 

항상 희생되는 건 힘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항상 할리우드 전쟁 영화를 보면서 이걸 오락 영화로 즐기면서 봐도 되나 싶었다. 주인공이 결국 모든 난관을 물리치고 살아 남았을 때 안도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낀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주인공인 파울까지 모두 다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어찌 보면 그게 전쟁의 참모습이다. 

누구도 살아나갈 수 없다. 

전쟁 자체가 지옥이기 때문이다. 지옥에서 인간이 살아 나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미 한 번 지옥으로 온 이상 비상구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전쟁은 끔찍하고 대의명분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킨다. 지금 들려오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소식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전쟁 소식으로 묻힐 가능성이 높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는 더 많은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처럼 미국이 전쟁 억지 정책을 다수 포기하면서 미국도 자신들의 국익과 관련없는 전쟁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번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협상 역시 미국 내 물가 인상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아마 이 틈을 노려 많은 나라들이 그 동안 참아온 불만을 터뜨릴 가능성이 높고 전세계에서 총성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들릴 거라고 쉽게 예측해 볼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그리고 역사는 잊은 인류에게도 미래는 없다. 그렇게나 많은 전쟁을 하고도 여전히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고 인공 지능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합리적인 선택 역시 늘어날 거라고 기대했으나 그런 기대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애초에 인공 지능 역시 권력층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이 영화보다 더 적나라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모든 걸 보여주는 영화를 최근에 본 적이 없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그저 그런 전형적인 전쟁 영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야기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연출과 연기 그리고 압도적인 촬영까지 현대의 걸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전쟁을 찬성하는 모두가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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