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영화 이매큘레이트 신을 빙자한 광기

 쫀나의 영화 리뷰 

티빙 웨이브 영화 추천 이매큘레이트 후기 리뷰 결말 정보 

이 영화를 까내리고 싶지는 않으나 왜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하고 있는 건지는 이해가 간다. 

일단 중반부 전까지 너무 재미가 없고 결말도 지겨울 정도로 뻔하다. 

이런 다소 뻔한 장르의 영화는 전개는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결말 부문에서 뒤통수를 후려치는 장면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영화 이매큐렐이트는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결말도 허무할 정도로 예상 가능하다.

특히 언론에서 이야기한대로 시드니 스위니의 놀라운 연기 이야기도 과장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시드니 스위니는 말 그대로 역할에 비해 평이한 연기를 보여준다. 혼자 하드 캐리 했다고 느껴질 만한 부분이 없고 시드니 스위니가 아니어도 누가 하더라도 더 잘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인상적이지 못 했다는 말이다. 

시드니 스위니가 좋은 배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나는 시드니가 영리하고 영특하고 작품을 보는 눈이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오스카에 오를 만한 배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오스카 역시 연기력만을 평가하는 시상식은 아니기에 확률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이 몇 명 더 나온다. 

그런데 그게 별로 영화의 재미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나마 중후반부에 거북이처럼 기어가던 영화의 흐름이 우사인 볼트처럼 급발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흐름이 빨라진 건 맞지만 재미까지 배가시키지는 못 한다. 

나도 중간에 하차하려고 하였으나 그래도 결말이 어떻게 나는지가 궁금해서 계속 본 건데 결말마저도 애매한 수준이어서 욕을 아니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소재 자체가 흥미로운 지점이 분명 있기는 한데 설득이 안 되는 지점이 너무 많아서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나서 예수님의 유전자를 십자가 못에서 찾아낸 것도 좀 이해가 안 가고 그걸로 생명을 잉태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 역시 우스울 따름이다. 현대의 과학을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모든 게 허술하기 그지없는 빈약한 상상에 근거하다 보니 이야기 자체도 황당하게 전개가 될 따름이다. 게다가 무슨 18세기도 아니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데에도 수녀원 만큼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것도 아닐 텐데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지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더 황당하다. 

뭐 아무 생각없이 감상하면 딱히 불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단 재미가 없다. 

게다가 수녀를 상대로 저런 끔찍한 일을 벌이는 데에 저 정도로 동조하는 종교 세력이 과연 있을까. 게다가 저걸 오래도록 한 거 같은데 말이 안 새어 나가는 게 거의 불가능한 지경 아닌가. 종교를 상대로 저런 끔찍한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조금 놀라울 지경이다. 나는 천주교 신자도 아니지만 만약 신자 입장에서 영화를 보면 어이가 없는 걸 넘어 분노가 일어날 듯하다. 

아무래도 세상과 단절된 수녀원이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기에 그러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같기는 한데 너무 말이 안 되는 지점이 많고 불쾌한 부분이 많아서 쉽게 받아 들이기 어렵고 결말 역시 너무 예상 가능해서 실망스럽다. 

나는 적어도 마지막 부분에서 태어난 아이가 메시야라도 되는 게 차라리 전복적이지 않나 싶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아니어서 오히려 살짝 분노가 치밀었다. 

완성도가 아주 나쁜 것도 아니고 그럭저럭 킬링 타임용 영화는 되긴 하지만 인상적인 영화도 아니고 재미도 없어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넷플릭스 영화 피아노 레슨 후기

 의미 찾다가 재미를 잃다  나 혼자 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영화는 예술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없다. 적어도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예술과 상업을 같이 가지고 가던가 아니면 상업적인 면모를 잃어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르덴 형제나 봉준호 감독 영화를 좋아한다. 예술적인 경지에 다다른 작품이지만 일반 대중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재미있다.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이 초반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되지 못한 이유가 너무 상업적이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칸 심사위원들이 어떠한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그 경계에 선 영화들을 좋아 한다. 아무리 예술을 한다고 해도 지루하면 그 순간부터 최악의 영화로 남는다. 무수히 많은 영화 감독들이 예술 한 번 해보겠다고 덤벼 들지만 제대로 성공한 사람이 없다. 제대로 된 상업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다른 차원으로 가야할 예술 영화를 잘 만드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마블이나 DC 영화 같은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건 또 아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은 내 인생 최악의 영화 중 하나로 꼽을 정도이며 며칠 전에 본 뮤지컬 영화 위키드 역시 너무 지루해서 영화 보는 내내 하품을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상업이나 예술 영화로 가르는 거 자체가 크게 의미가 없다. 결국은 내가 시간 낭비라고 느끼지 않을 만큼 재미를 제공해 주느냐 아니냐로 귀결된다. 어떻게든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대놓고 상업 영화라고 해서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없다. 나는 그렇게 남들이 극찬하는 영화인 듄도 너무 지루해서 하품을 하느라 눈물이 고일 정도였던 터라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영화 피아노 레슨이 딱 그러했다. 그런데 피아노 레슨은 내가 싫어하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존 데이비드 워싱턴.  배우 덴젤 워싱턴의 아들로 외모는 크게 닮지 않은 사람인데 말 그대...

영화 보랏 속편 후기

 멍청한 사람들에게 돌려 말하는 지혜로운 방법  사샤 바론 코센은 외모 덕분에 국적이 의심이 가긴 하는데 실제로는 영국 국적의 유대인이다.  2006년에 공개가 되어 전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보랏 1 편 이후로 14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온 이 영화는 역시나 대단한 풍자를 보여준다. 이번에는 딸 역할로 배우 마리아 바칼로바가 합류하는데 오스카 여우조연상에 올랐을 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큐멘터리 장르로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섞인 영화라고 보면 되는데 마지막 장면의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의 추태는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정도 몰래 카메라 라면 우리 나라에서는 영화로 공개도 되지 못했을 텐데 확실히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 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이클 펜스 부통령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어지는 모습 역시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이 영화가 공개가 될 당시만 해도 트럼프는 물러나고 바이든이 되면서 무언가 바뀔 거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이제 바로 이어질 대선 앞에서 또 다시 트럼프가 당선이 될 게 거의 확실한 상황이라 이 모든 게 참 아이러니하다. 냉정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멍청해서 라기 보다는 민주당이나 바이든이나 서민들의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미국이 불을 지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과의 사이도 좋지 않은 마당에 러시아 전쟁까지 벌어지다 보니 물가는 당연히 오르게 되었고 당연한 결과로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은트럼프 집권 때보다 훨씬 더 안 좋아지고 있다.  임금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물가와 특히 월세의 급격한 인상은 임금 인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다시 트럼프를 지지하는 걸 그들이 무식하다는 식으로 나무라는 건 내가 봐도 충분히 억울할 만하다. 특히 미국처럼 닫힌 사회에서 서민들은 시급에 의존하기 마련이고 물가 인상에 직격탄을 입는다....

영화 아노라 리뷰 결말

 쫀나의 영화  영화 아노라 리뷰 후기 결말 해석 정보  아노라에서 내가 보였다  처음에는 신데렐라 스토리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아 그렇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이건 아노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였다. 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이내 아노라에서 내 모습을 보았고 아노라의 언어에서 속마음을 들켜 버리고 말았다. 오히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아노라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내가 언제 한 번 저렇게까지 내 속마음을 남들에게 표현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아노라의 직업을 듣고 아노라를 비난한다. 남자들이 수 많은 여자와 자면 카사노바라고 칭송받지만 여자들이 하면 걸레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치 당연한 세상의 진실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의 아노라는 과연 죄인일까.  아노라는 결혼할 자격도 사랑할 권리도 없는 걸까.  아노라는 그저 사랑받고 싶을 뿐이다. 몸을 팔고 그와 동시에 웃음과 춤도 팔며 돈을 벌지만 그녀의 일하는 태도를 보면 그저 즐겁게 자기 일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직업인일 뿐이다. 누구바도 신나게 일하고 자신의 고객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한다.  영화를 보면서 애니의 직업 윤리에 감탄했다.  나 역시 승무원이라는 서비스업에서 일했지만 저 정도로 즐겁게 일하며 고객들을 만족시키면서 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성격이 모나거나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 재벌의 아들 이반 역시 그렇게 만나게 된 애니는 처음부터 이반을 사랑한 건 아니었다. 아니 사랑할 마음도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이반과 애니는 그 순간만큼이지만 서로를 원했고 사랑했다.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 있다면 말이다. 아니 일단 애니는 이반을 사랑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의지 혹은 집착이라고 불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