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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이트비치 후기 결말 해석

 쫀나의 영화 리뷰

[디즈니 플러스 영화 추천 나이트비치 후기 결말 해석]

어딘가 엉성한데 의도만큼은 좋다 

감독의 야망이 높다고 해서 항상 결과물이 좋은 건 아니다. 

OTT 직행 영화 나이트비치는 시작은 창대했으나 중반부 이후 길을 잃으면서 어렵사리 결말의 터널에 당도한다. 이 정도면 뭐 마무리는 잘 했는데 다 보고 나서 관객들은 생각하게 된다.

이게 내가 원한 결말이었나

이런 결과를 나는 예상했었나

이게 바람직한 결말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영화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감독이나 각본이 의도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이 된 건지 의문스럽다.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영화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로튼 토마토 점수가 유독 낮은 영화이기는 한데 모두 기대하던 바와 영화가 제공하는 바가 다르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분위기만 잡고 제대로 뭐 한 게 없긴 하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아주 무미건조하게 나가던가

아니면 

조금 무모하게 극한으로 몰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장르 안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길을 잃고 연출이나 각본이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조금 더 각본을 다듬고 나왔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히 극장 개봉을 안 하고 바로 OTT로 직행했는데 왜 그런 건지 이해는 간다. 

요즘 

이런 영화는 흥행하기가 참 어렵고 에이미 아담스의 티켓 파워도 이전 같지 않다 보니 영화사 임원들 입장에서는 OTT로 보내는 게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극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영화인지를 판별해야 하기에 더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요즘 이렇게 애매한 위치에 있는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어렵고 이렇게 OTT로 공개가 되어도 크게 주목받기 어렵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 대해 다루면서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 나이트비치는 성공한 예술가였던 여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이야기가 그동안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이제 우리도 대충 알고 있다.

육아라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말이다. 

실제로 출산 여성의 90% 이상이 산후 우울증을 경험한다. 

그러나

여전히 광고와 매체에서는 모성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포장한다. 엄마의 역할은 아이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돌보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엄마가 되었으면 아이의 모든 걸 받아 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아빠는 왜 없을까. 

영화를 보면서 미국도 아이 돌봄 시스템이 생각보다 좋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지어 부자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은 직장을 다녀도 육아 휴직 자체가 없다. 상상 이상으로 복지 제도가 안 좋은 게 바로 미국이다. 누군가 미국을 파라다이스로 부른다면 나는 미국의 의료와 복지 시스템을 한 번 보라고 이야기한다. 

무상 복지와 무상 의료에 대해서 미국은 공산권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나라에서 아이 돌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 나라 역시 이에 대해 말이 많은데 그나마 우리 나라는 어린이집을 보내는 데에 있어서 크게 경제적인 부담이 없는 건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국가의 세금이라는 건 이런 곳에 쓰여야 한다.

하지만 영화 나이트비치에서 갑자기 엄마가 된 여성은 경제적으로 아주 여유로운 편은 아니기에 아이를 잠시 맡길 곳을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보모를 고용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 우리 나라도 집으로 방문하는 보모를 고용하는 건 굉장히 비싼 일이다. 한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가 않다는 점은 역시나 슬픈 현실이다.

아이를 오로지 엄마 혼자서 감당한다. 

그렇다면 왜 육아는 오로지 엄마만이 담당하게 되었을까. 

왜 남자들은 육아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을까.

이건 뭐 남자들의 개인적인 책임으로 돌려도 되긴 하지만 넓게 보면 자본주의 시스템이 점점 더 노동자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게 옳다. 과거만 해도 미국은 남자 혼자 노동을 해도 부인은 물론 4명 이상의 자녀들이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복지 제도가 사라지고 미국에서도 노조가 자취를 감추면서 노동자의 인권은 물론 경제적인 수준도 바닥으로 내리 꽂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 연봉 1억이 많다고 하지 않는 건 그 자체의 수준이 낮아서 라기 보다는 연봉 1억인 사람들이 써야 하는 필수적인 지출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가지고 가는 세금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 급격하게 오른 물가 덕분에 미국인들의 삶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다. 그러니 월급이 오르긴 해도 체감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월급이 오른 만큼 지출은 더 커지고 있고 그로 인해 오히려 월급이 줄어 드는 효과가 발생하고 있는 게 바로 미국이다. 

뭐 한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최근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

미국의 큰 도시들에서 노숙자들이 점점 더 늘어가는 건 비단 마약 때문 만이 아니다. 왜 평범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노숙을 하며 마약에 쉽게 노출되는지 그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미국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보통은 마약에 먼저 중독되어 길거리의 삶을 전전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월세를 내지 못 해 길거리에 나 앉게 된 이후에 마약에 중독이 되는 경로라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특히

트럼프처럼 인기에만 연연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는 대통령이 저렇게 재선을 하는 걸 보면서 나는 길게 보면 미국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당분간은 나라 자체가 부강할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기에는 이미 미국은 디스토피아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구조적인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지극히 여성 개인적인 문제로만 몰아 간다. 그리고 그 해결책이 남편이 이런 여성의 존재와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에서 찾으려고 한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걸 과연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남편이 헌신하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긴 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나쁘지 않으나 이는 상당히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시야에서 이야기해야 할 주제를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로 몰아가다 보니 영화의 깊이는 사라지고 자극적인 대사와 장면 만이 남는다. 게다가 각본은 누가 쓴 건지 지나칠 정도로 말이 많아서 답답할 정도다. 그나마 에이미 아담스가 신들린 연기력으로 이 모든 단점을 상쇄하기는 하는데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좋은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주제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룰 거라면 수위 측면에서 조금 더 밀고 나가서 엄마가 사람 한 명 정도는 죽여도 되었을 텐데 겨우 죽인다는 게 집안의 고양이 한 마리다. 미국인들에게 반려동물은 크게 의미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죽음에 비할 바일까. 게다가 고양이를 죽인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가 잘 안 간다. 

비단 

여성의 고통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게 여성 혼자만의 문제일까.

그리고

남편이 이 모든 걸 이해한다고 과연 이 고통이 해결될 문제일까. 

남편 혼자 각성해서 육아 문제가 해결이 되었을 거라면 지금 전세계적인 저출산 현상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다. 아이를 키우는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애초에 그런 게 되었다면 저출산이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을 리도 없다. 

영화 나이트비치는 여성의 애환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차원에서는 흥미로운 영화이지만 장르적 쾌감을 전혀 제공하지 못 하고 때로는 이게 무슨 장르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를 제외하면 인상에 남는 장면도 없기는 한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아이를 낳게 될 남편들이라면 영화 나이트비치는 필수적으로 한 번 정도는 보았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에이미 아담스의 신들린 연기력을 제외하면 건질 게 큰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

의도는 좋았다.

결과는 별로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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