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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시의적절하고 유쾌하다

 쫀나의 영화 리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후기 결말 정보 

아드만 스튜디오 이름 하나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제작 과정을 유튜브로 찾아 봐도 흥미롭지만 요즘처럼 컴퓨터 기술이 발달한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이런 구식 기술을 누가 쓰냐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그 기술에 매력에 반한 나같은 사람들도 많다는 걸 모두가 잊고 있는 듯하다. 

이런 구식 기술이라니

가 아니라 

이렇게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애니메이션의 매력이라니

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동작을 만들기에 작업 시간이 워낙에 많이 걸리는 기술 중 하나다. 그러하기에 시도하는 회사가 거의 없고 내가 알기로는 아드만 스튜디오 하나만이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아드만 스튜디오 역시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가 넷플릭스가 내민 구원의 손길을 받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시대 정신과 맞지 않기에 도태되어야만 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래도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매번 만들어 주어서 절이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게다가 이번 시리즈 복수의 날개는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인공지능과 로봇이라는 소재를 핵심에 배치하면서 우리가 이 기술을 사용하면서 느껴야만 하는 경각심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주고 있다. 특히 요즘 인공 지능 이슈가 한창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발전하고 있는데 아직 우리의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빠르면 10년 그리고 늦어도 20년 안에는 우리의 생활이 많이 바뀌어 있을 거라고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인공 지능과 함께하는 미래가 과연 기대만 가득할까.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본다.

월레스와 그로밋에서도 나오지만 이 민감하고 예민한 기술은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서 천사 혹은 악마가 되기도 한다. 해킹 한 번으로 조작이 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위험해서 오히려 보안 측면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을 사용할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기술이 전부인 회사들은 회사 안에서 보안을 위해 인터넷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수기와 수작업으로 모든 걸 기록하고 보관한다고 알려진다.

온라인과 인터넷 기술은 편리하긴 하지만 보안을 완벽하게 지키긴 어렵기에 그러하다.

첩보 영화에서 보듯이 손톱보다도 작은 저장 장치 하나로 기업이나 정부의 기술이나 정보가 한 번에 유출되는 시대라면 그 누가 그렇게 쉽게 모든 정보를 보관하고 싶어할까. 일부러라도 무거운 책으로 기술을 보관하려고 하며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재미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기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아무리 노봇이 영특하다고 해도 결국 고군분투하며 블루 다이아몬드를 지키는 건 영특한 그로밋이다. 말도 하지 못 하고 노봇만큼 효율적으로 정원을 관리하지도 못하는 개일 뿐이지만 누구보다 민첩하고 눈치가 빠르며 위험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다. 결국 아무리 대단한 기술도 사람의 손을 타야 하며 무엇보다 감시를 받아야 한다. 

기술이라는 건 특히나 첨단 기술이라는 건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가 너무나 달라진다. 

인공 지능 기술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기술의 초기 단계로 규정과 관련 법이 미흡해서 이런 저런 좌충우돌을 겪고 있으나 생각 아니 상상 이상으로 법과 규칙은 넘어야 할 산이다. 마차에서 자동차로 순식간에 넘어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도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말과 자동차가 같이 다닌 시간까지 합한다면 생각보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의 인식을 추월하지 못 한다. 

하지만 신기술을 무조건 선한 인간이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그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한 첨단 기술이 누구의 손에 넘어 가느냐에 따라서 모두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소 섬뜩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영화 안에서도 잘 보여진다. 물론 애니메이션 영화이기에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가 되지만 인간 역사에서 이러한 신기술이 항상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가 된 건 절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영화 오펜하이머만 봐도 파괴적인 기술이 어떻게 인간을 몰살시키는지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나. 

새로운 기술은 편리하지만서도 섬뜩한 측면이 있다. 

기술은 죄가 없다. 

그걸 이용하는 인간의 의도가 죄로 가득할 뿐이다.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풀어 나가는 건 아드만 스튜디오만의 매력이다. 앞으로도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작품들을 양산해 내었으면 한다. 그나저나 처음에는 월레스가 너무 답답하고 한심했는데 저렇게 속 편하게 세상을 사는 것도 누군가에는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그로밋같은 똑똑한 동반자는 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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