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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 후기

 두 명의 엄마 무한의 사랑 

아무 생각없이 보기 시작했다가 눈물 콧물 다 뺀 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하게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리하고 흥미로운 영화다. 이탈리아의 역사적인 배경을 어느 정도 알고 보면 좋으나 그렇지 않아도 크게 무리는 없다. 이탈리아를 전혀 모른다면 북부와 남부의 경제 상황이 저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이런 유럽 나라들이 종종 있긴 하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그러한데 그래서 그런지 돈이 좀 있는 지역들은 독립을 하려고 하기도 한다. 한창 스페인도 카탈루냐 지역의 독립 운동이 빈번하지 않았나. 이탈리아 역시 북부는 남부와 구별되고 싶어하며 이탈리아 영화 보면 나오지만 북부에서는 아직도 남부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지금도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 나라도 과거에는 전라도 사람은 조폭이 많고 믿지 못 한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 내렸는데 그와 비슷하다고 보면 이해가 빠를테다. 

나는 그런데 영화 보면서 이 정도로 경제적인 차이가 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고 공산당의 이름 아래 남부의 아이들을 일정 기간 동안 북부로 보내는 운동이 있었던 것도 처음 알았다. 실제로 북부로 간 아이들은 그 부유한 삶에 익숙해지자 거기에서 정착한 사례도 분명 있었을 테다. 매일 빵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생활과 쥐새끼 까지 잡아 먹어야 하는 생활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50대 까지도 극심한 가난을 겪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테다. 우리 나라는 경제 발전이 워낙 빠르게 성장하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1980년대부터 모두가 부유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러하다. 나도 밥을 굶고 한 기억은 없다. 그래서 절대적인 가난에 대해 알 길이 없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지금의 우리는 살 찌는 걸 우려해 오히려 덜 먹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 자체가 빈곤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상대적인 가난에는 익숙하다. 누군가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보면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게 자본주의의 핵심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인간의 행복 측면에서 과연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이긴 하다. 

남부의 아이들은 제대로 씻지도 못 하고 심지어 신발도 없다. 추운 겨울에도 옷은 당연히 없고 고양이는 다 잡아 먹어 쥐만 돌아 다닌다. 엄마는 먹고 살기 위해 부자에게 몸을 팔며 아들은 10살이 되기 전부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숙련공으로 일해야만 한다. 그 상황에서 바이올린을 배운 주인공 아메리고가 북부로 엄마 몰래 떠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아메리고의 친 엄마의 행보다.

분명 자신이 낳은 아들이기에 아메리고를 나폴리로 데려올 수 있었으나 어머니는 아들을 놓아 주기로 결심한다. 가슴이 찢어질 만큼 힘들지만 그런 결정을 내린다. 남부에 있으면 그 좋아하는 바이올린은 커녕 음악을 들을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나폴리 지역도 마피아가 유명한데 원래 가난한 도시에서 깡패가 창궐하는 건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멕시코가 왜 마약 카르텔이 판을 치는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메리고에게는 북부에서 있었던 시간이 한 여름 밤의 꿈보다 더 달콤했다. 특히 그러한 경험은 가난하고 끔찍한 남부에 돌아와서 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한 번 극락을 맛 본 사람에게 지옥에서 남은 평생을 살라고 하는 것만큼 고문도 없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일하다 본국으로 돌아간 제 3세계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에 돌아가서 극심한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실제로도 많다고 들었다.

우리 나라가 환상적으로 잘 사는 나라는 절대 아니지만 본국의 인프라와 환경을 비교해 보면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에 그러한 박탈감을 느끼는 듯하다. 

전혀 몰랐던 사실과 이야기를 알 수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웠고 아메리고와 친엄마 그리고 아메리고를 돌봐 준 제 2의 엄마 역시 모두 다 공감이 가기에 그 누구 하나 뭐라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아들을 위해서 모든 걸 해 줄 수 밖에 없었던 친 엄마는 얼마나 슬펐을까. 자신이 평생 데리고 살고 싶으나 아들의 꿈과 미래를 위해서는 아들을 놓아 주는 게 최선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을 거다. 

놓아주는 것도 사랑이다. 

극단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부모라면 자식을 위해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내려 놓는 과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 생각보다 아이는 더 큰 존재이기도 하고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바로 아이이기에 그러하다. 그래도 아메리고의 엄마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들을 풀어 훨훨 날게 만들 수 있는 선구안은 있었다. 

하지만 나라면 과연 가능했을까. 

자식을 포기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 손을 떠난 아이는 가끔 내가 상상하는 이상의 곳으로 올라 가서 세상을 호령할지도 모른다. 나의 과거 지식과 경력 그리고 경험은 크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과거와 현재가 정확하게 반복되지는 않기에 그러하다. 

엄마에게 받은 음악적인 재능을 북부의 엄마를 통해 펼칠 수 있다니 그 사랑은 두 배가 아니라 무한대가 되었다. 

평점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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