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지는 않지만...
영화 탈주를 보면서 북한에서 탈북했다는 소년이 문득 떠올랐다.
대학을 들어갈 당시 집안의 형편이 어려워 종교 단체의 기숙사에서 생활을 잠시 할 때가 있었다. 우리 나라 종교단체들은 욕을 많이 먹기는 해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지원들을 많이 하는데 그 중에서 탈북 소년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었고 그로 인해 북한에서 탈북한 지가 상당히 지난 소년과 얼마 정도 같은 기숙사 건물에서 지내게 되었다.
종교 활동도 열심히 하고 항상 밝은 얼굴로 지내는 아이여서 종교에 관심이 없던 나와는 그다지 친하게 지내진 못 하였으나 그의 출신 성분 덕분에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았다. 아마 그 친구는 나를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할 테지만 말이다.
나와 동갑이었으나 인생의 고난을 너무 이른 나이에 겪어서인지 겉으로만 보면 나보다 10살은 많아 보이는 아이였다. 아니 나만이 아니라 그 안에 있던 동갑내기와 비교해도 나이가 유독 들어 보이기는 했다. 그나마 해맑은 태도와 천진난만한 표정이 자신의 나이를 그대로 보여 주었는데 아무래도 북한에서 10년 넘게 살다가 탈북을 해서 그런지 또래와는 대화도 잘 안 통하고 공통 소재도 없었던 터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 했다.
그래도 다함께 간식을 먹다가 북한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를 잠깐 들어볼 수 있었는데 그동안 흔하게 들어오던 탈북 이야기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으나 실제로 탈북한 사람의 입에서 탈출 이야기를 듣는 건 새로운 경험이어서 신기해 하면서 집중해서 들었다.
그 소년은 가족과 함께가 아니라 혼자 탈출을 감행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탈출을 실패해서 감옥 안에서 한 달 넘게 생활을 했다고 한다. 나는 탈출하다가 걸리면 무조건 총살형이라고 생각했는데 탈북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그렇게 다 죽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 달간 흙바닥 감옥 안에서 사람이 먹을 수 없는 밥을 먹으며 버티다가 출소 후 다시 탈북을 시도해서 마침내 성공했다.
하지만 바로 한국으로 오는 건 거의 불가능해서 중국에서 몇 년간 한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숨어 지내다가 성인이 되기 전에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뉴스에도 보도될 정도로 떠들썩하게 들어 왔다고 하는 거 보면 그런 연유로 종교 단체에서 지원을 받게 되었던 거 같기도 하다.
사실 나는 당연히 탈북이라고 하면 남한이 잘 살기에 북한보다 여유로운 남한으로 가려고 도망을 친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 한정이겠지만 그 친구는 남한이 이 정도로 잘 사는 걸 자신은 몰랐다고 이야기했다. 그보다는 북한 자체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너무 힘들고 먹을 게 없다 보니 막말로 그저 살려고 탈출을 하는 일이 많고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로 넘어 오고 나서야 남한이 잘 사는 걸 알게 되는 탈북자들도 의외로 많다고 한다.
영화 탈주 안에서 규남은 이미 남한이 북한보다 몇 배는 더 잘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요즘은 북한도 인터넷도 하고 스마트폰도 있어서 남한의 현실을 다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최근 북한은 코로나 이후로 탈북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최근 뉴스를 보면 굉장히 신박한 방식으로 남한으로 넘어 오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영화 탈주 역시 실제로 이와 비슷한 탈주 사례가 있었기에 영화로 나올 수 있었는데 현실에서 이러한 일이 없었다면 영화로 만들어지고 나서 사람들이 개연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으나 이미 현실에서 군사 분계선을 목숨을 걸고 넘어 탈출을 시도한 북한 군인들이 있었기에 영화를 보면서도 저런 식으로 탈출을 했겠구나 싶었다.
심지어 허름한 어선을 타고 남한으로 탈북한 사례도 최근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북쪽으로 탈북하는 경로가 많이 막힌터라 다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북한을 탈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우면서도 전혀 놀랍지 않다. 특히 최근 북한의 고위 외교관들 역시 탈북을 시도해서 성공한 사례까 우리 나라에서도 크게 뉴스로 보도되기에 이르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게 신기하리만치 비현실적이다.
나중에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 이야기가 많이 나오겠으나 북한 정권이 어떻게 체제를 유지하는지 그 비결(?)이 진심으로 궁금하다.
이미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의 붕괴가 현실적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북한 정권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걸 강대국들이 딱히 좋아하지 만은 않아서 실질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인지는 조금 의문이긴 하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남한에는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우리가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짐작만 할 뿐이다.
더군다나 북한 무너진다는 이야기는 단군 시절부터 나온 듯한데 아직도 뚜렷한 징후 같은 게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생각보다 체제 유지에 도가 튼 북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북한의 서민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건데 밥을 못 먹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배급 시스템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 때에도 북한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북한의 실상을 알고 있기에 규남이 왜 그토록 목숨을 걸고 탈출을 하려고 하는지보다는 어떻게 탈출을 하고 이게 과연 성공할 수 있는지가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이를 설득력있게 그려내는 게 관건이었다. 애초에 북한에서 탈출을 하는 사람들이 워낙에 많고 지금은 고위층들도 빤쓰런을 하는 상황이기에 그러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름 나쁘지 않은 전개와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규남이 탈출을 하게 되는 경로와 동선이 크게 어색하지 않다. 내가 군사분계선의 현실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서도 이야기 자체에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인다. 특히 중반부를 넘어 가면서부터는 규남의 탈출이 성공하기만을 바라는 내 모습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실패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규남이 남한에 와서 실컷 실패하고 삶을 이어나갔으면 하고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된다.
이종필 감독은 무거운 배경에 가벼운 소재에 집중하면서 재미를 잃지 않았다.
북한 정권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규남에게 집중하면서 그리고 헌상의 과거 동성 연인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를 한층 가볍게 만드는데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것으로 보여지긴 한다.
물론 탈출 과정이 너무 영화처럼 진행되는 데다가 말이 안 되는 지점이 몇 번 보이긴 하지만 흐린 눈을 하고 보면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규남과 헌상의 관계 설정 자체가 독특해서 그런지 마지막에 헌상이 결국 규남을 남한으로 보내주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제목만 봐도 오락적인 상업 영화이기에 보고 나서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잘 만들었다. 확실히 이종필 감독은 상업 영화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신 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보니 극장에서 놓친 영화인데 앞으로 이 감독의 영화는 의심하지 않고 극장에서 무조건 봐도 좋을 듯하다.
배우 중에서는 홍사빈 배우가 단연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런 생각하면 너무 수준 낮아 보이지만 다시 한 번 그나마 자유로운 남한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가끔은 인생에서 비교할 대상이 있는 게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 전에 개봉했다면 3백만은 기본으로 넘었을 텐데 확실히 요즘은 극장에서도 관객몰이가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이 될 정도다. 당장 내년부터는 극장에 걸리는 한국 영화가 극도로 줄어 드는 시기인데 앞으로가 더 문제라 정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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