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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 후기

 썩은 사과 하나만 제때 걸러 내었더라면...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면서 어린 시절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할 수도 있으나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일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은 안방에 쓰다 남은 동전을 모아 놓은 하얀 통이 있었다. 십원부터 백원 그리고 가끔 오백원까지 모아 놓는 통이었는데 당연히 나를 위한 통은 아니었고 부모님이 쓰다가 남은 동전들을 모아 놓는 통이었기에 나는 만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통을 건드리게 되었고 동네 친구들과 몰래 그 통에서 훔친 얼마의 돈으로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사 먹고 의기양양하게 해가 지고 나서 저녁 먹을 즈음에 집으로 돌아 왔다. 신나게 친구들과 마을에서 놀고 돌아왔으나 오자마자 집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그 어린 나이에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으나 나의 강도 행위를 보신 이모님이 부모님에게 나의 범죄를 알렸고 부모님은 내가 들어 오기만을 벼르고 있었다. 마침 우리 집에 지내러 오신 이모님이 나와 친구들의 범죄 행각을 우연히 보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나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기를 내내 바래 왔었다. 

정확히 무얼 먹었고 뭘하고 놀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으나 동전을 훔친 순간부터 기분이 안 좋았던 것만큼은 확실히히 기억한다.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비극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마무시하게 혼을 났고 너무 어린 나이라 체벌을 받진 않았으나 부모님은 물론 이모로부터도 무시무시하게 주의를 들었다. 당연히 울음을 터뜨렸고 다음 부터는 그러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나중에는 결국 위로를 듣기는 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혼쭐이 나고 부터는 남의 물건을 다시는 손대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하물며 먼지라고 해도 말이다. 

그 이후 초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전학가고 나서 학교에서 쓸 물건을 사러 문구점을 갔는데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문구점 문 앞에 학용품이나 장난감들을 전시해 놓는 경우가 꽤 많았고 대부분의 주인들은 가게와 방이 연결된 공간에서 TV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한 틈을 노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어린이 하나가 부주의하게 전시되어 있는 물총 하나를 들고 잽싸게 뛰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바로 옆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놀란 나머지 주인에게 고하지도 못하고 나는 내가 살 것만 사고 돌아 왔는데 그 아이가 뛰어가는 모습과 함께 그보다 몇 년전 부모님과 이모로부터 혼쭐이 난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결국 그 아이의 행동은 저날 한 두 번이 아니겠으나 그 누구도 그 아이를 혼내지 않으면서 아이는 도둑질이 너무나 당연한 행동 방식이 되어 버렸던 거다. 그날 그 아이에게 망설임이나 죄책감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재빠른 발재간만 볼 수 있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밖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부모님이 알기 어렵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으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아이가 무언가를 훔치는 걸 부모가 모른다면 그만큼 눈치가 없고 자녀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말이다. 돈을 스스로 벌 수 없는 아이이기에 집안에 원래 없었던 물건이 있다면 한 번 추궁을 해보았을 테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금방 들통날 게 뻔하기 때문에 조금의 관심만 있어도 자녀가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부모는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고 작은 물건이니 괜찮다는 식으로 넘겼을지도 모르고 그도 아니면 그 아이는 부모나 보호자의 관심이나 애정을 전혀 받지 못 하는 상태일 수도 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나오는 사제들 역시 초반에 아동들을 성추행했을 당시에 교회에서 엄격하게 처벌하고 관리했다면 이렇게까지 큰 일로 번지진 않았을 테다. 처음 발생했을 때부터 뿌리를 뽑겠다는 마음 가짐으로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파문하고 다시는 사제를 하지 못 하게 했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 알려지기도 전에 그리고 피해자들이 그렇게나 많아지기 전에 이러한 일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초반에는 욕을 좀 먹을지도 모르지만 소수의 사제의 책임으로 몰고 가면 될 일이었다.

썩은 사과를 미리 솎아 내었다면 교회 자체가 썩어 나가는 걸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테다. 전체 사제가 그러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의 일탈로 인해서 이런 비극이 발생하기 시작한 건데 초반에 제대로 잡지 못하면서 일을 더 키운 격이다. 

늘 하던대로 교회는 어리석게도 이 일을 은폐하려고 하였고 이로 인해 사제들은 뒤에서 몰래 더 악랄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다보니 그 누구도 범죄 행위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았고 더 대담하고 악랄하게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아무도 이들을 혼내지 않다 보니 나이만 먹었지 말 그대로 강간범이 되어 수많은 아동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며 이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면서 죄책감은 전혀 가지지 않는 악마들이 되어 있었다. 오히려 교회가 악마들에게 자양분을 제공해주고 면책까지 해주다 보니 이들은 소리소문없이 여기저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이러한 상황에서도 교회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진실이 보도되는 것을 혼신의 힘으로 막으려 했다.

검찰과 법원 그리고 경찰은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었으니 언론 역시 가능하리라고 순진하게 생각하였으나 소신있는 그리고 직업 윤리가 있는 언론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걸 보면 사회가 아무리 부패하고 썩었다고 해도 어느 한 부분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그 사회는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과연 우리 나라도 그러한가. 

흔히 말하는 독재 국가를 보면 정치와 경제는 물론 법과 군대 그리고 결국 언론까지 모두 장악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어느 한 언론사라도 진실을 보도하려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막말로 현재 러시아와 중국 언론들이 자국의 현실에 대해서 냉철하게 다룰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왜 이렇게 독재 국가에서는 언론인들이 권력자들의 뒤를 핥아주다 못해 권력의 나팔수가 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언론에서 잘 다루지는 않으나 환경 문제나 기업 문제를 냉철하게 보도하던 기자들이 죽어 나가는 숫자가 과거보다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정보는 넘치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전하는 사람들은 죽어 나가다 보니 정보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그 수준이 더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아마존의 환경 파괴를 보도하고 주장하던 환경 운동가들이나 양심 있는 저널리스트들이 의문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빈번해진 시기가 있었는데 그 이후 관련 보도가 당연히 줄어들 수 밖에 없었고 실제로 진실을 보도하려던 기자들이 미행을 당하거나 죽을 위기를 넘기는 일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다. 

한 마디로 이제는 목숨을 걸어야 진실을 보도할 수 있고 이를 위해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 세상에 그 정도의 직업 윤리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먹고 살겠다고 자기가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면 그 직업을 유지하고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이냐 이 말이다. 

넓게 보자면 진실을 보도하고 공정성을 기준으로 기사를 쓰는 언론인들이 목숨 걱정을 안 하는 세상을 만드는 게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당장 우리 나라만 봐도 권력의 개가 되어 날조 그리고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이 이렇게 변한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공정성과 정의에 대해서 무관심하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역시 종국에는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게 된다. 

미국이 아무리 문제가 많은 나라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공정한 보도는 사실 지금 미국같은 나라가 아니면 그 어느 나라도 하기 힘들다는 점이 인상적이고 그러하기에 미국이 참 대단한 나라긴 하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이런 사제들의 성추문이 미국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닌데 보스톤 글로브 지가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전체 유럽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우리 나라도 그나마 아시아에서는 민주주의와 정의가 바로 선 나라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과도기에 있는 시점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다시 뜨기를 진심으로 한 번 바래본다. 양심있는 언론인들이 그나마 목숨을 걸고 진실을 보도하는 한 우리 나라의 미래는 그렇게 암울해 보이지 않는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중국이나 러시아같은 나라가 아닐까.

아무도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그러는 순간 목숨이 날아가는 사회에서 과연 누가 양심을 챙기고 보도의 진실성을 신경쓰겠나. 

사제의 성추문 사건은 전세계를 뒤흔들 스캔들이었으나 교회 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권력에 굴복하고 양심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청산해야 될 건 얼른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다. 

청산되는 쪽을 제외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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