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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캐리온 후기

 지울 수 없는 싸구려 향기 

넷플릭스다운 영화 

감독의 이름을 보고 나서 기대치가 확 낮아지긴 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볼만은 한 지 로튼 토마토 점수가 괜찮은 편인데 평을 읽어 보면 아쉽긴 하다. 로튼 토마토는 모 아니면 도 시스템이어서 점수가 높다고 해서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거나 아주 재미있다는 뜻은 아니다. 차라리 점수를 수치화하는 메타 크리틱이나 IMDB 평점이 더 객관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로튼 토마토가 이 정도로 신뢰를 얻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게 그래서 조금 이해가 안 가긴 한다. 

개인적으로는 로튼 토마토는 폭탄을 거르는 용도로 사용하는 걸 추천한다.

영화의 완성도를 평하기 보다는 피해야 할 영화를 알려주는 데에는 꽤나 정확한 지표를 제공한다. 나름 관대하다고 할 수 있는 로튼 토마토에서 점수가 안 좋다면 영화의 재미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로튼 토마토 점수가 높다고 무조건 좋은 영화라고 보기 어렵지만 점수가 낮다면 의심을 해 볼만하다. 

영화 캐리온은 로튼 토마토 점수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그게 다라고 할 수 있다. 보자마자 어디서 저렴하고 싸구려 향기가 진하게 올라온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 중 거의 대부분에서 나는 이 지독한 악취는 잊을라하면 나타나서 시청자들을 괴롭힌다. 특히 태런 애저튼을 제외하면 영화의 장점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한 때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저렴한 느낌이 나는지 궁금해서 왜 그런지 혼자 이유를 분석해 보기도 했다. 

일단은 디테일 면에서 일반 스튜디오 영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마치 비디오 대여용 영화 느낌이 난다. 한 마디로 B급 영화 느낌이 난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예전에는 오스카 후보를 노리고 넷플릭스에서도 어느 정도 자본과 시간을 투자한 영화들이 종종 나오긴 했는데 이런 소수의 영화들이 흥행면에서 크게 실패하면서 넷플릭스는 더 이상 오스카에 집중하지 않게 되었다.

오스카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히지만 언제나 소모적인 영화를 공장처럼 생산해 내는 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 번 보고 나서 잊혀질 만한 영화들이 OTT를 통해서 너무 자주 나오고 있는 건 그야말로 시간과 자원 낭비가 아닐까. 안 그래도 환경 오염이 심각한 마당에 굳이 만들어질 필요없는 영화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끊임없이 나오는 게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낭비되는 태런 애저튼 

영화의 유일한 장점인 태런 애저튼을 제외하면 영화 캐리온은 뻔하디 뻔해서 하품이 나올 만한 영화다. 소재도 많이 본 데다가 전개도 소름끼칠만큼 특별함이 없다. 뻔한 이야기와 소재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항상 새롭고 대단히 창의적인 영화만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나치리만큼 게으르다.

뻔하고 사골같은 소재를 이용하려면 최대한 스케일이 좀 크기라도 하던가 디테일에 집중을 해야 한다. 공장에서 만든 라면도 어떻게 그리고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끓이느냐에 따라 맛이 다 다르다. 어떠한 라면은 같은 브랜등임에도 누가 끓이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사실 캐리온에서 다루는 이런 소재는 누가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 

하지만 캐리온은 그 특유의 재미를 살리긴 하지만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다분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간은 잘 흘러가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볼만큼 가치가 있는 영화인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안 보고 넘어가도 아무 일도 없을 듯하여 후회도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은 이내 확신으로 바뀐다. 

우리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영화가 걸작이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와 기본 정도는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더 이상 넷플릭스 디스카운트를 스스로 만드는 일은 그만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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