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나는 비슷한 영화가 거의 동시에 OTT에서 공개가 된 경우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에서 보는 걸 선호한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화질과 음질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기에 그러하다. 이게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도 보다 보면 그 차이를 절감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 그녀가 죽었다 역시 다른 OTT 보다 넷플릭스를 통해 보게 되었고 아마 종국에는 넷플릭스 하나 정도만 구독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김세휘 감독의 데뷔작인 그녀가 죽었다는 촬영한 지가 좀 된 창고 영화였다.
2024년에 개봉하였으나 촬영은 2021년 초에 마무리가 되었다. 보통 영화는 촬영하고 나서 이르면 반년이나 1년 안에 개봉하는 걸 생각해 보면 흥행에 자신감이 없던 영화였다고 볼 수 있다. 감독이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배우의 흥행 파워가 대단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소수의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아마 코로나 전에 개봉했다면 3백만도 넘겼을 테지만 요즘 극장은 굉장히 한산한 편이고 이제 과거처럼 애매한 작품들도 볼만하면 2백만이나 3백만을 넘기는 시대는 영영 오지 않을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고 영화 중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겼기에 의미심장하다.
최근에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영화 소방관도 이런 저런 불안 요소가 많았으나 순항하는 걸 보면 결국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는 흥행한다는 진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가 죽었다는 김세휘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담당한 영화인데 신입 감독의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흥미롭다.
그리고 재미있다.
완성도 면에서는 조금 부족하지만 이건 아마 예산이나 지원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 제대로 된 조건에서 각본을 써 나간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작품보다 김세휘 감독이 연출할 다음 상업 영화가 기대가 된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우리가 사는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모든 상업 영화들이 트렌드에 민감하지만 그녀가 죽었다는 인싸와 관종 그리고 관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나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관음증 변태인 구정태와
인싸의 끝판왕 한소라
이 두 사람이 특별히 이상하다거나 특이하다는 인상을 나는 특히 받지 못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가 구정태처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타인의 일상을 즐기며 한소라처럼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구정태와 한소라는 정도가 좀 지나칠 뿐이지 평범한 우리와 크게 차이가 없다.
오히려 이런 과함이 구정태와 한소라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게 만드는데 결국 평범한 사람들도 구정태와 한소라와 비교하면 크게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본인과 가족 그리고 친지나 친구들의 사진을 올리는 게 조금 신기하긴 하다. 딥페이크와 보이스 피싱의 시대에 너무 안일한 사고 방식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어린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는 경우 악용될 확률이 굉장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많음 엄마들이 아무 생각없이 올리는 걸 많이 보았다.
자식을 위한 걸까.
본인을 위한 걸까.
알 길은 없지만 결코 좋은 의도대로 쓰이질 못할 터라 이들의 과시는 무언가 공허하다.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은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삶을 남들에게 과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을 과시하며 사는 한소라같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영상과 사진은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
편의점에서 소세지를 먹으면서 인스타그램에서는 비건이라고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는 거다. 거짓된 삶이라고 할 수 있으나 소셜미디어는 삶이라는 개념에서 제외시킨다면 딱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저 우리가 믿고 싶어하는 걸 던질 뿐이다. 그러면 그걸 대중은 받아서 물고 빨고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나는 사실 구정태보다 한소라가 그나마 메타 인지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나마 한소라는 본인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본인이 나쁜 일을 저지르고 있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탓이라고 방어한다. 이 자체가 모순이긴 하지만 그래도 영리한 측면이 있다. 너무 머리를 굴리다가 통수를 맞게 되는 편이긴 한데 의외로 세상에 적응도 빠르고 두뇌 회전도 빠른 편이다.
하지만 구정태는 조금 다르다.
구정태가 아마 일반인들의 시선이나 의식과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본인이 하는 일이 분명 범죄인 데다가 불쾌한 일 투성이이지만 스스로는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는 소소하게 수리를 해주면서 본인을 거의 홍길동 정도 되는 의인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잘못된 일을 말도 안 되는 작은 선한 일로 상쇄하려고 한다.
마지막에 오영주 형사를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자신은 죄가 전혀 없고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많이 반성했다.
그동안 나의 관음증을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한소라같은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구정태같은 변태 관음증 환자들은 정도가 다를 뿐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오히려 이 영화는 한소라보다는 구정태같은 변태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으나 눈치가 없는 이 세상의 구정태들은 이렇게 말하면 또 못 알아 들을 게 뻔해서 좀 안타깝다.
영화가 조금 투박하고 편집이나 연출이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긴 한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과 개연성 부분에서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감독님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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