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내야만 하는 현실
매맞고 사는 아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보기 시작했던 터라 중반부 이후 분위기가 변해서 살짝 당황스럽긴 했다. 원작 소설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고 제목이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나오다 보니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가십걸 스타인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여전히 아름답고 예쁘고 그래서인지 매력이 넘친다고 할 수 있는데 뭐 초반은 그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예상 가능하게 흘러간다.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남자와 행복하게 연애를 하며 결혼까지 가게 되는 뭐 그런 뻔하디 뻔한 이야기 말이다.
라일은 잘 생기고 몸매도 좋은데 직업까지 좋다.
말 그대로 완벽한 남자의 정석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놀라울 만큼 폭력적이라는 사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보다 완벽한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자꾸 다치게 하며 뻔한 레퍼토리를 반복한다. 자신은 변할 수 있고 상담을 받고 변화할 거라고 말이다. 조금 웃겼던 부분이 부인에게 끊임없이 폭력을 행사하며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까지 상담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제 시작할 거라니.
이미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믿기 힘들 판에 저건 그야말로 릴리를 다시 불러서 내 기분이 내킬 때마다 폭력을 휘둘러야 겠다는 자기 고백에 가깝지 반성이 전혀 아니다. 반성을 해도 사실 미심쩍을 판인데 저걸 변명이라고 하는 라일에게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 앞에서 마음이 흔들릴 게 뻔한 릴리가 불쌍하기도 했다.
영화 우리가 끝이야를 보고 과거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우리 부모님은 교회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시골이다 보니 별의 별 사람들이 다 교인으로 있었던 기억이 난다. 도시 교회처럼 순백의 깔끔한 느낌의 신도들은 하나도 없었고 전부 다 가정에 큰 문제 하나 씩은 달고 사는 분들이었다. 특히 여자 신도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술에 절은 알코올 중독자 남편을 달고 살았는데 그 중에서도 한 분이 유독 심하게 남편으로부터 맞고 다니는 걸 나 역시 어리지만 알고 있었다.
가끔 남편이 심하게 때리면 우리 집으로 딸이 도망와서 말려 달라고 애원하고는 했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그 집에 가서 싸움 아니 일방적인 폭력을 말리기도 했다. 그런 일이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꼭 있었고 심하게 맞는 경우가 아니면 찾아 오지 않았으니 실제로는 거의 매일 때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신기한 건 술을 안 마시면 세상 순한 사람인데 술만 들어갔다 하면 난리가 난다는 점이었다. 나는 폭력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으나 교회에서 본 그 아저씨의 모습은 세상 순박한 사람이었기에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적응이 안 가기도 했다. 결국 그 분은 술 드시다가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는데 어찌 보면 그렇게 일찍 죽은 게 자기에게도 그리고 부인과 자식에게도 나름의 복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다시 말하면 그 아저씨는 죽기 직전까지 부인을 때리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죽어서야 해결될 문제인 걸 생각해 보면 라일의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 변명인지 다시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성들은 불쌍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어머니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우리 아버지는 고집불통에 말이 전혀 안 통하는 사람인 데다가 눈치도 없어서 친구도 별로 없는 사람인데 그럴 때마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가 부모의 사랑을 많이 못 받아서 그런 거라고 나를 설득시키고는 했다. 지금은 안다. 그게 얼마나 어이없는 변명이었는지 말이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어머니 역시 아버지 옆에 붙어 있었던 거였다.
물론 어머니의 희생과 인내는 나에게는 이득이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이혼했다면 분명 나 역시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어른들은 아니 어머니들은 자녀 때문에 이혼을 하지 못 한다는 이야기가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요즘은 여성들도 사회 참여가 활발하고 일을 다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은 이혼하는 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마 릴리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면 라일과 과연 이혼이라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릴리의 어머니가 누구보다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을 하지 않은 건 고통스럽지 않았다기 보다는 이혼하고 나서의 생활이 얼마나 궁핍해질 지가 눈에 선히 그려졌기 때문일 테다. 특히 우리 나라도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하지 않은 시절에는 여성들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기 힘들었기에 더 그러하다.
사실 나는 지금도 매 맞는 아내를 우습게 그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 한다. 제대로 된 폭력을 당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농담이라고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한 번 제대로 본인들이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요즘인데 나 역시 약자이며 지금은 아니어도 언제라도 약자의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블레이크 라이블리
드라마 가십걸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른 스타.
타고난 외모와 피지컬로 인해 인기를 모았으며 사생활도 부족함이 없는 스타 중 하나인데 이번 영화에 제작자로 참여해서 매력을 과감없이 보여준다. 카더라에 의하면 감독과 편집 과정에서 다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냥 배우도 아니고 영화 제작자인데 그 정도 권력은 당연히 휘두를 수 있는 거 아닌가.
일단 돈을 벌어야 하는 게 목적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영화 우리가 끝이야는 평론가들이 좋아하진 않았으나 박스오피스에서 초대박이 나면서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상업적인 감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어차피 이런 통속적인 내용으로 예술을 하기 보다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확실히 더 영리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 버렸다.
결혼도 하신 분이고 아이도 낳으신 걸로 아는데 여전히 매력적이고 섹시해서 스크린에서 매력이 한가득이다. 막말로 혼자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부분도 커서 편집을 마음대로 했다고 해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애초에 그렇게 작품성을 기대하고 보는 영화는 아니지 않나. 초반의 분위기가 꽃밭이라면 중후반부 이후 분위기가 바뀌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남자라도 아닌 건 아닌 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일까. 어쩐지 처음부터 라일이 너무 완벽해 보여서 불안하기는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 등장부터 불안하긴 했다.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는 해도 공공재라고 할 수 있는 실외 의자를 집어 던지고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건 자신의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제어를 아예 못 한다는 이야기인데 릴리는 라일의 외모에서 헤어나오지 못 한다.
사실 릴리도 나름 경계를 어느 정도 많이 했고 라일을 테스트하려고 온갖 시도를 많이 하고 밀당을 했으나 그 과정에서도 라일은 특별히 나쁜 기운을 내뿜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 라일의 폭력적인 면모가 제대로 드러난 지점이 소름이라면 소름이다. 그러면 그동안은 나름 관리하고 참았다는 이야기 아닌가.
누군가는 릴리가 전 남자 친구 애틀러스와 연락이 닿아서 그런 거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건 오직 핑계에 가깝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심지어 릴리가 애틀러스와 바람을 피웠다고 해도 라일의 폭력적인 행동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그런 핑계를 대는 거 자체가 우리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 절여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만약 반대 입장에서 릴리가 라일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면 우리는 주저없이 릴리를 미친년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남자가 하면 이유를 찾고 여자가 하면 마녀 사냥을 하는 건 인류의 역사에서 항상 반복되어온 일이다.
사람은 변할까
라일은 과연 릴리의 사랑의 힘으로 변할 수 있을까.
과거 대학교에서 심리학 수업을 들을 때 상담을 겸하는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만약 애인이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행사할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주저없이 떠나라고 말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고 상담을 통해서도 그리고 약물을 통해서도 변하기 어렵다고 이야기 하셨다.
상담에 오래 몸담으신 분의 말씀이라서 더 기억에 남았다.
전문가들도 이야기한다.
폭력적인 사람은 바꾸기 어렵다.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다. 화가 나면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주먹이 올라가거나 하는 사람이 갑자기 상담을 통해 그리고 약물을 통해 바뀌는 게 아니다. 본인도 이게 잘못된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절대로 고치지 못 한다. 말 그대로 죽어서야 끝난다.
그런 사람들이 울고 불고 매달리면서 절대로 변하겠다고 하는 감언이설에 속으면 안 된다. 사랑의 힘으로 사람 하나 바꾸겠다는 건 망상에 불과하다. 사랑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건 본인의 자존감 뿐이다. 타인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나 계획이 얼마나 의미없는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으나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한다.
하지만 아서라.
릴리도 바보가 아니었으나 라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이혼을 하자는 이야기는 딸 에미를 보고 나서 떠올렸을 정도다. 아버지의 폭력을 보고 자란 릴리이지만 본인의 폭력을 당할 때에도 적극적으로 항변하지 못 했다. 이걸 끊어내야 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행동을 옮기지 못 했다. 사실 라일은 최악의 남자는 또 아니다.
우리 나라 사회 뉴스 면을 보면 헤어지자고 한 마디 했다고 아니 사귄 적도 없는데 고백을 거절했다고 젊은 여성들이 살해된 경우가 정말이지 많다.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기에 그리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 차별 문화가 있었기에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건 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들의 자의식을 보호해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죽어야 하나.
어찌 보면 릴리는 라일이 딸 에미를 보면 자신을 놓아줄 거라고 확신했을지도 모른다. 라일의 눈높이에서 이해가 가게끔 왜 자신이 다시 재결합을 할 수 없는지를 설득시킨다. 라일도 그제야 이해한다. 자신의 딸이 그런 놈한테 당한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역지사지는 이래서 중요하다.
사랑은 변한다
애틀러스와 잘 되는 듯한 결말로 마무리가 되긴 하였으나 열린 결말이어서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순정파인 애틀러스가 릴리와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지만 둘은 헤어지고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사람은 안 변하지만 사랑은 변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둘은 너무 어린 시절에 만나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게 불안 요소다.
하지만 릴리의 인생에서 봄날은 애틀러스 때문에 온 게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를 마주하면서 시작되었다. 릴리가 애틀러스를 만나 행복했다로 끝나는 결말이 아니라 릴리가 행복해진 이후에 애틀러스를 만나 더 큰 행복감을 누린다가 이 영화의 진정한 결말이라고 할 만하다. 막말로 애틀러스와 헤어진다고 해도 크게 관계가 없다.
어차피 사랑이라는 건 항상 변하기 마련이니.
영화 자체는 조금 어수선하긴 하다. 연출이 좋은 것도 아니고 각본이 완벽한 것도 아니고 무언가 완성도가 높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나 메시지 자체가 좋고 무엇보다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매력이 상당하다. 뻔한 주제이긴 하지만 배우 때문에 영화를 다 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비 스타라는 말이 있다.
극장으로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배우라는 말이다. 요즘 들어서는 무비 스타가 워낙 없어서 잘 안 쓰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톰 크루즈나 브래드 피트같은 스타가 누린 수식어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티모시 샬라메 정도가 이 수식어를 받을 만한 배우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블레이크 라이블리 역시 그러하다.
배우의 존재감 하나 만으로 영화를 살려낸다.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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