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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겟 아웃 후기 결말 해석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는다면  

나는 외국에서 승무원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면서 전세계 여러 나라를 가 보았으나 흑인 승객들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마주친 기억이 별로 없다. 아시아 항공사였기에 그러하다고 하기에는 미주 비행을 굉장히 많이 한 회사 중 하나였기에 신기했는데 아프리카 대륙은 남아공 정도만 비행을 했다고 해도 지나칠 정도로 그러한 비행에서조차 흑인들을 찾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다양한 인종들을 태우고 비행을 다녔지만 유독 흑인들은 볼 수 없었던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심지어 남아공 비행에서도 흑인들을 본 기억이 거의 없어서 나는 남아공에는 흑인들이 생각보다 없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가보면 의외로 흑인들이 많아서 의문점을 가진 기억이 난다. 미주 비행에서도 흑인들을 거의 마주칠 일이 없다는 것도 경악스러운 점이었다. 

단순히 흑인들이 내가 다니던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나름 기묘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하기에 가끔 흑인 승객이 타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과거 중학생 시절 미국으로 어학 연수 및 여행을 교회를 통해서 한 달 정도 다녀온 적이 있다. 없는 살림에 미국까지 보내준 부모님에게 지금까지 감사하고 있는데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인상적인 여행이었다. 교회에서 진행한 만큼 텍사스의 미국 교회들을 돌면서 찬양을 하며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그 당시 방문한 백인들만 있는 교회의 환영사가 지금도 인상적이었다.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이 와서 새롭다.

라는 이야기가 있었고 어린 나이였으나 순간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미국 영화를 보면 백인 만이 아니라 다양한 인종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 분들은 실제로 살면서 자신의 인종과 다른 사람들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게 절실히 느껴졌다. 그런 말을 듣고 교회에 오신 분들을 한 번 둘러보니 정말 다른 인종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분들은 그 당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소년 소녀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하는 게 신기했을 테고 안 좋은 의미로 그런 이야기를 한 건 아니겠으나 미국이 얼마나 분열된 나라인지 당시에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정말로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을 보고 나름의 흥분을 느끼고 있었던 거다.

미국도 주마다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아무래도 한국 교회에서 하는 행사이다 보니 기독교 문화와 가까운 텍사스에서 거의 모든 행사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백인들이 주로 다니는 교회와 연결이 되었을 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당시에는 왜 교회에는 백인들만 있는 거지라며 의문을 가지기도 했었다. 

사실 한국 사람은 원래 피부가 하얀 편이기 때문에 백인들과 있어도 겉으로 보면 티가 거의 나질 않는데 만약 그 안에 흑인이 한 명 있다고 가정해 보면 그림이 사뭇 달라진다. 

영화 겟 아웃은 절대로 미국에서 흑인이 되어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에 대해 다루고 있고 더 놀라운 점은 흑인이 아니어도 충분히 공포스럽다는 점이다. 조던 필은 이 이후에도 다른 작품을 만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겟 아웃이 조던 필 감독 최고의 영화라는 점에 이견을 달고 싶지 않다. 

다소 황당한 설정인 데다가 겉으로만 들어 보면 이게 무슨 말이 안 되는 이야기야.

라고 말이 바로 나오지 않는 게 가장 황당한 지점이다. 그래서 한 번 내가 가진 흑인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았다. 흑인과 어울리는 직업은 배우 그리고 가수 아니면 운동 선수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아는 유명한 흑인들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흑인 의사

흑인 변호사

흑인 선생님 

흑인 교수 

흑인 간호사 

흑인 CEO

는 무언가 입에 잘 붙지 않는다.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듯이 미국인들에게도 아마 흑인은 그런 이미지가 클테고 실제로도 비슷하다. 이 부분이 가장 소름끼치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영화에서처럼 미국의 백인들에게는 흑인들의 피지컬을 제외하면 취할 부분이 없다 싶을 테다. 

흑인들은 매일 백인 경찰이 자신들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흑인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백인 경찰에게 걸리면 공손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치는 건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특히 미국에 정착한 흑인들의 피지컬이 좋은 건 애초에 건강하지 않은 유전자는 노예선에서 살아 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 흑인 노예들이 겪은 온갖 학대와 차별을 생각해 본다면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만이 살아 남은 게 그리 놀랍지 않다. 흑인들의 피지컬이 미국 내에서 특히나 좋은 건 그런 이유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리고 이제 그런 흑인들의 피지컬만 취하려는 백인들의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흑인 남자 주인공을 보는 건 그로 인해 모두에게 그 자체가 공포일 수 밖에 없다. 조던 필 감독의 이 기묘한 상상력이 모두에게 극찬을 받은 건 현재의 미국도 노예선이 들어오던 미국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기 때문이다. 

과연 흑인들만 차별을 받을까.

지금 트럼프 정부가 다시 들어선 걸 보면 백인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인종이 차별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민의 역사가 그렇게나 오래된 미국이지만 아직도 통합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거의 보내지 않았다는 점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재미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보고 나면 슬퍼지는 그런 영화를 이보다 더 기막히게 만들기는 어렵다. 아마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회자되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두번째 보는데도 재미있어서 흥미롭게 보았다. 

주기적으로 재관람해야 겠다. 

평점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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