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의 힘 그리고 타일러 페리
타일러 페리의 영화다.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제작자이자 감독인 타일러 페리는 최근 들어 넷플릭스와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영화 6888 중앙우편대대 역시 제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 영화이긴 한데 그 소재가 조금 특이하긴 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우편 대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역시나 흑인인 타일러 페리의 정체성에 맞는 이야기를 가지고 온다.
유일하게 유럽에 파병이 된 흑인 여성 부대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전혀 생각해 보지도 못한 실화여서 신선하면서도 흥미롭기도 했다. 로튼 토마토 점수를 보니 역시나 낮은데 타일러 페리 최근 작품들이 다 이런 식이어서 크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어찌 보면 타일러 페리의 연출 스타일이나 이야기 전달 방식에 대한 호불호가 강렬하게 갈릴 거 같은데 나는 지금까지만 보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 한다. 그런데 물론 타일러 페리의 인장이 너무 강하게 박혀 있는 영화여서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 한다.
지금까지 타일러 페리의 연출 작품을 드라마 하나 영화 하나를 보았는데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야기꾼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연출이 우아하지는 않은 편이고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백인 일색인 할리우드에서 나름 노골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 자체가 존경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던 필은 평론가들이 열광하는 흑인 감독 중 하나인데 조던 필보다는 우아하지 않으나 타일러 페리 역시 자신 만의 매력이 출중한 감독이다.
그저 우아하지 않을 뿐.
6888 중앙우편대대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타일러 페리 식으로 가공되었다. 그런데 난 이게 크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흑인의 이야기를 흑인 만큼 제대로 담아서 보여줄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서 묘사되는 대부분의 몰상식하고 인간 이하의 백인들을 보며 백인들이 불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실제와 별반 다르지 않지 않나. 미국은 인종 차별주의자 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백인들에게는 죽기보다 싫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제로 백인들은 본인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인종 차별주의자들이다.
단적인 예로 할리우드에서 유망주 배우들을 꼽았는데 한 명을 제외하면 거의 다 백인 계열이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단 피부색이 어두우면 할리우드에서 제대로 활동조차 하기 어렵다. 아무리 영화 블랙 팬서가 대박이 나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깜짝 흥행을 기록하더라도 예외적인 경우라고 보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리고 내가 또 타일러 페리의 작품을 흥미로워하는 이유 중 하나로 전혀 몰랐던 젊고 재능 있는 흑인 배우들을 기용한다는 점이다. 유색 인종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기회를 박탈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도 새롭고 신선한 흑인 배우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 역시 마음에 든다.
영화는 뭐 예정대로 흘러 간다.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던 흑인 여성 부대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우편대대 미션을 성공리에 수행한다. 처음에는 나도 우편대대 일이 그렇게 어려운가 싶지만 당시에는 우편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은 데다가 전쟁에서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장성들이 중요하게 생각했을 리가 없기에 무시하고 등한시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가족들의 안부나 소식이 병사들에게는 삶의 희망이 되기도 하기에 편지를 전달하는 건 그리 단순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었다.
당연히 주소지가 어느 정도는 정해진 지금의 우편 시스템과 전시의 상황은 다르다. 가족들이야 한 주소 안에 있으나 병사들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이를 가족에게 알릴 수도 없다. 정보가 새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롭고 명석한 흑인 부대원들은 병사들이 남긴 부대 마크를 통해서 이들의 위치를 짐작하고 향후 나아갈 장소까지 예측한다.
백인이자 남성 군인들은 흑인들을 개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했기 때문에 다른 부대처럼 우편 일에서 실패를 할 거라고 보았으나 무려 90일 안에 1천 7백만 통이 넘는 편지를 제대로 분류하면서 그야말로 레전드로 남았다. 영국 파병 이후로는 프랑스로 가서 다시 한 번 업적을 세우게 되는데 영화 말미에 실제 영화의 등장 인물이 나와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 또한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전쟁 영화에서는 특히 여성이나 유색 인종의 활약이 거의 안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들 역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걸 상기해 보면 타일러 페리같은 인물이 이러한 역사를 재조명했다는 거 자체게 의미를 둬야 하지 않나.
그리고 영화 역시 굉장히 재미있다.
케리 워싱턴이 혼자서 하드 캐리하긴 하지만 다른 배우들의 존재감이나 연기 역시 훌륭한 편이다. 너무 흑백 논리로 백인들을 악마적으로 그리고 있긴 하지만 애초에 무수히 많은 미국 영화에서 흑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그렸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정도는 약과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완성도가 아주 높고 우아한 영화라고 보긴 어렵지만 최소 재미있는 영화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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