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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포칼립스 Z 종말의 시작 후기 결말

지루함과 긴장감 사이의 단짠단짠 

또 좀비다. 

좀비 소재의 영화는 끊임없이 나온다. 좀비처럼 죽지도 않고 나온다. 아쉬운 점은 수작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스페인에서 만든 좀비 영화 아포칼립스 Z 종말의 시작 역시 비슷하다. 나쁘지는 않은 수준이지만 칭찬을 해주기에는 재미 면에서 많은 점수를 잃어 버린다. 원작이 있는 영화로 이야기 자체가 생각보다는 탄탄하기도 하고 결말 부문에서도 마치 후속편을 예고하는 것처럼 끝나고 있기는 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뒤의 이야기가 그리 궁금하지는 않다. 

너무 노골적으로 후속편을 예고하고 있어서 감독이나 제작자나 양심이 없나 싶었다. 모든 OTT 영화들은 성공할 경우를 대비해서 후속편을 생각하고 있고 그러한 연유로 결말을 참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경향성이 최근 들어 더욱 더 증가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마음에 안 든다. 결말을 보고 나서도 왜인지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또 다른 바이러스가 스페인을 비롯한 전세계에 출몰하고 역시나 전세계는 다시 한 번 봉쇄를 겪는다. 이번에는 누가 봐도 좀비 바이러스이기에 한 번 감염되면 모두 다 부산행의 좀비처럼 우사인 볼트를 능가하는 육상 선수가 되어 주인공을 뒤쫓는 구조인데 초중반부에는 주인공이 집안에서 거의 나오지를 않기 때문에 긴장감 있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 않는다.

하나 답답한 것 중 하나가 남자 주인공인 마넬이 너무 고구마 캐릭터인 데다가 행동도 굼떠서 본인이 화를 자초하는 측면이 크다는 점이다. 곁눈질로 봐도 좀비 바이러스인 게 눈에 뻔한데 크게 놀란 것도 아니면서 그 자리를 바로 피하지 않거나 안일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한숨이 다 나왔다. 물론 그로 인해 이야기가 연결되고 하긴 하지만 이렇게 편의적으로 이야기가 연결되는 거 자체가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나 위기 상황에서 갑자기 몇 초 안에 주변에서 해결 방안을 쉽게 찾아내는 점도 별로였다. 저 정도면 비서가 쫓아 다니면서 불가능한 일을 해결해 나가라고 바로 옆에서 조언을 해주고 필요한 물건을 손에 쥐여 주는 수준 아니던가. 그러다 보니 좀비같은 감염자들에게 쫓기는 장면에서조차 크게 긴장감이 살지 않는다. 

물이 끓어 오르지 못하고 식다 보니 다 보고 나서도 기분이 참 묘하다. 

결국 마지막에 누나가 있다는 안전한 카나리아 제도로 가려고 하지만 누나는 전화로 여기도 위험하니 오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 개고생을 하고 나름 낙원으로 향하려 하였으나 어디에도 낙원이 없다는 뻔한 결말로 마무리하면서 영화가 잘 되면 후속편을 만들어야지 하는 제작자의 뻔한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여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변호사가 직업이라는 주인공 마넬은 백박백중 명사수로 돌변하고 평소에 잘 타지도 않던 경주용 오토바이도 잘 타고 갑자기 만능 히어로가 되어 버린다. 그래 뭐 이 부분까지는 너그럽게 넘어가 줄 수 있는데 필요할 때마다 위기 상황을 넘어가는 건 참아주기 어렵다. 절박한 상황에서 이렇게나 상황이 빨리 해결되면 다음 상황에서도 이러겠지 하면서 조마조마함을 느끼기가 거의 어렵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뜩이나 전개도 속도감이 있는 편이 아닌데 그나마 좀비에게 쫓기는 장면에서조차 긴장감을 상실하다 보니 영화가 전체적으로 느려지고 지루해진다. 제작비를 많이 쓰지 않은 건 알겠는데 생각보다 오토바이를 따라올 만큼 빠른 좀비들이 주인공에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 한 게 놀라울 뿐이다. 

좀비 영화 소재로 많은 감독들이 걸작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제대로 된 영화는 정말 손에 꼽는다. 

총평 

이토록 지루한 좀비 런닝맨 영화라니..

평점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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