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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룩백 후기

 순간을 소중하게 

인생은 생각 이상으로 허무하다. 

절망을 굳이 끌고 오지 않더라도 인생을 살면서 공허한 순간을 느끼는 때가 종종 있다. 아무 문제도 없고 평온해 보이는 삶일지라도 그러하다. 오히려 정신 없이 바쁜 순간에는 그러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한 순간 허무함이 봄바람처럼 찾아 온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라는 감정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은 항상 남아 있다. 오히려 정말 행복할 때에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지나고 보면 아 그때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다라고 추억할 뿐이다. 애초에 행복이라는 느낌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나 그 아려한 기억을 애써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안 삼는다. 

후지노와 교모토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둘이 함께 만화를 그리는 순간이었을 거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못하였으나 교모토가 죽고 나서 돌이켜 보면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교모토를 방에서 끌고 나오지 않았다면 교모토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자책하는 후지노에게 교모토는 이야기한다.

세상 밖으로 이끌어줘서 고맙다고. 

후지노와 교모토는 서로에게 나무같은 존재였다. 후지노는 교모토는 그리고 교모토는 후지노를 의자하며 성장해 왔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이 명확했으나 교모토는 후지노에게 더 도움이 되고자 미술을 전공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후지노는 교모토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둘 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방식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우정과 사랑은 구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특히나 어린 나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후지노와 교모토는 존경과 사랑 그리고 우정의 모든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후지노가 교모토를 구원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지노 역시 교모토에 의해서 인생의 많은 부분이 결정되었다. 만화가라는 진로를 삼은 것 역시 교모토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교모토나 후지노나 천재라고 할 만하다. 후지노는 이야기 구성 면에서 그리고 교모토는 전체를 보는 배경 작가 면에서 말이다. 둘의 조합은 그야말로 최강이었다. 교모토는 그 누구보다 후지노가 그리는 만화의 세계관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존중과 존경이 담긴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후지노 만화의 배경을 담당했다. 후지노가 다른 배경 작가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토록 후지노에게만큼은 완벽했던 교모토. 

그리고 거짓말처럼 교모토는 정신 나간 살인마에 의해 갑자기 세상을 등진다. 후지노의 말처럼 평생 방 안에 있었다면 교모토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간에 만약이라는 개념은 없으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일찍 죽을 일은 없었을 테다. 후지노가 좌절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내가 후지노였더라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모토는 짧은 인생이긴 하지만 후지노 덕분에 만화를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교모토에게 과연 그림만 그리는 작은 방안의 공간이 천국이었을까. 절대 아니다. 교모토에게는 후지노와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만화라는 꿈을 꾸고 미대에 진학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이 천국이었고 행복이었다. 

서로에게 천국을 선물했던 후지노와 교모토는 비록 현실 세계에서는 더 이상 마주할 수 없지만 후지노는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진실된 팬이었던 교모토를 위해 만화를 계속 그려 나간다. 이제 후지노에게 만화는 단순한 직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교모토를 평생 추모하고 추억하는 수단과 방법 그 이상이다. 

교모토의 죽음이 억지스럽다고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으나 내 주변에서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 다들 어이없는 이유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교통 사고나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젊은 나이에 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흔하다. 죽음은 멀지 않은 곳에서 찾아오며 특별한 이유없이 주변 사람들을 덮친다. 

남겨진 사람들은 말 그대로 하늘이 아니 세상이 무너진다.

아무리 울부짖고 발버둥친다고 해봐야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만약 이 시간에 이 사람에게 이걸 부탁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라며 후회하며 시간을 보낸다. 마치 내가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모든 걸 통제하지 못한 게 통한스러울 정도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을 후회하며 시간을 낭비한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다 치유의 순간이다. 

후지노 역시 교모토를 추모하며 다시 만화를 그릴 힘을 얻는다. 절대 잊지 않는다. 만화를 통해서 후지노의 작품 안에서 교모토는 평생토록 거친 숨을 내쉬며 살아 있을 예정이다. 그 무엇도 교모토를 다시 죽이지는 못 한다. 후지노가 평생 기억하는 한 교모토는 절대로 죽지 않는 불사신이다. 

총평 

말 그대로 걸작 

평점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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