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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BL 영화 들을 수 없는 거리 후기

 허접하지만 대만의 현실을 반영하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가 차원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 중 하나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 중국이 호시탐탐 노리는 나라여서 그런지 몰라도 중국과 대만을 분리해 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인들에게는 TSMC의 나라로 기억이 될 테지만 내가 가본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대만은 대만 특유의 매력이 절절하게 살아있는 생기 넘치는 나라였다. 그런 대만 특유의 정서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보이는데 대만은 동성 결혼에 관대한 나라여서 그런지 관련 드라마나 영화도 정말 자주 나온다. 

영화 들을 수 없는 거리는 단편 영화로 서로 사상이 다른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 명은 환경 운동을 하면서 순수하게 세상을 알아가는 어린 대학생이고 한 명은 순진함을 잃고 세상의 타성에 젖을대로 젖은 경찰관이다. 둘을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서로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둘은 많은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며 서로를 갈구한다. 아무래도 단편 영화여서 제작비가 없었던 탓에 침대가 주 배경이며 주인공들이 팬티만 입고 헐벗은 장면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저렴한 제작비를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몸으로 채우려고 하는데 그러한 시도가 나쁘지는 않았다. 특히 궁금한 건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다 큰 남자 배우들이 저렇게 살을 부비면서 연인 연기를 하면 괜찮긴 한 건지 궁금하다. 이래저래 생각해 봐도 배우라는 직업은 가끔 보면 극한 직업이긴 하다. 

소소하게 둘의 관계를 보여주던 영화는 갑자기 둘이 대립하는 상황으로 예고도 없이 치닫는다. 이러한 급진적인 전개가 조금 당황스럽긴 한데 어찌 보면 감독의 의도는 이상과 현실의 대립, 그리고 현재 대만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만은 내부에서는 독립을 외치는 세력과 중국에 묻어 가려는 세력이 아직까지도 대립을 하고 있다. 

무엇이 현실이고 이상인지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이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렵다. 중국은 대만의 독립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대만 내부에서는 중국과 전쟁을 하기는 싫으나 그렇다고 중국에 속하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만나본 대만 친구들은 거의 다가 중국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다들 무뎌져서 말을 안 할 뿐이지 아마 내부적으로는 절대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되기는 싫을 거라는 생각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대만을 침공한다고 말을 할 뿐 지금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키기도 현실적인 여건이 맞아 떨어지지 않아서 과연 침공을 하기는 할런지 의문이다. 

마치 이러한 상황은 서로 섞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샤오샹과 빅의 상황과 비슷하다. 누구보다 가까이 위치하고 있으나 서로의 이야기나 의견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떠한 문제는 타협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이 둘의 관계가 그러하며 중국과 대만의 관계 역시 그러하다. 

영화 자체가 조금 허접한 수준이긴 한데 짧아서 그나마 다 볼 수 있었다. 

대만에도 분명히 영화 인재들이 많을 텐데 제대로 된 퀴어 영화 하나 넷플릭스와 손 잡고 말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대만은 동성 결혼 합법화여서 소수자들이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는 넷플릭스 본사의 원칙을 지킬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평점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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