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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왓츠 인사이드 후기 결말 해석

 상상을 그럴 듯하게 만드는 연출과 각본의 힘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나온 영화 왓츠 인사이드는 발칙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발한 영화다. 

독립 영화의 외형을 띄고 있기에 제작비가 그다지 많이 들어간 영화처럼 보이지는 않으나 각본과 연출이 훌륭해서 후속편이 무조건 나와 주었으면 하는 몇 안 되는 공포 스릴러 장르 영화인데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보기 시작한 터라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높았음을 고백한다. 그레그 자딘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는데 보통 우리 나라나 미국이나 각본과 연출을 같이 하는 경우가 영화에는 참 많은 듯하다. 

뇌를 연결하여 사람의 몸을 바꿀 수 있는 기묘한 기능을 가진 가방을 들고 돌아온 포브스는 동창생들의 결혼 전랴 파티에서 위험한 게임을 제안한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동창생 8명의 몸을 바꾸는 이 위험한 게임은 자극적인 동시에 흥미로운 게임이어서 모두가 금방 매료되고 만다. 누군가는 한 번 정도 상상을 해보았음 직한 일을 영화로 옮긴 건데 생각보다 그럴 듯하게 만든 데다가 개연성도 결말도 흥미로워서 계속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제대로 된 공포 영화라기 보다는 스릴러가 가미된 호러 영화인데 반전 결말이 조금 가볍긴 하지만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기에 아주 재미있었다. 특히나 기묘한 가방에 담긴 상상을 초월하는 기기는 현실에서는 가능한 기술이 절대 아니지만 영화적인 상상력 안에서는 충분히 허용되는 설정이고 이걸 동창생들끼리 한다는 점도 그럴 듯하다. 

학창 시절에는 크게 차이가 안 나던 동창생들도 10년만 지나도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력 그리고 직업적인 면에서 그 누구보다 차이가 커지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 만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그러한 동창을 부러워한다. 영화 안에서는 쉘비가 그러하다. 쉘비는 남자 친구 사이러스와 동거 중이지만 9년차 동거 커플이기에 권태기를 겪고 있다. 심지어 남친 사이러스는 자신이 아침 조깅을 하러 간 사이에 자위 행위를 할 정도로 자신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동창생의 결혼 전야 파티에 참석하게 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동창생들을 만나게 된다. 그 와중에 대학생 시절 광란의 파티에서 여동생 미성년자였던 베아트리스에게 술을 먹였다는 사실로 퇴학 처분을 당한 포브스가 파티에 돌아오며 분위기가 싸하게 식는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괴짜 과학자같은 포브스가 가지고 온 괴상한 가방 안의 물건은 모두를 흥분시키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친구들도 한 번 해 보더니 몸을 바꿔주는 기기에 묘한 중독성을 느낀다. 누군가는 과거의 연인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고 누군가는 남자 친구가 좋아했다고 하는 여자 동창생의 몸으로 남자 친구와 관계를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처음 시도가 마무리 되고 이 기기의 위험성을 그나마 알게 된 사이러스는 포브스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하고 빠지려 하지만 모두가 참여하는 상황에서 자신만 제외되기는 힘들기에 결국 게임에 참여하기로 한다. 

그리고 바로 일이 터진다. 

동창생 두 명이서 눈이 맞아 낡은 건물 발코니에서 광적인 섹스를 하다가 발코니가 무너지는 바람에 무참하게 죽어 버리고 만다.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본인들의 책임이지만 문제라면 몸이 바뀐 상황에서 일어났기에 이 상황을 바르게 돌릴 방법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당연히 남의 몸에 들어가서 영혼을 그대로인 친구들은 자신의 죽은 몸으로 들어가기가 싫고 또 다른 이유로 남자 친구가 좋아하던 니키의 몸으로 들어간 쉘비 역시 본인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특히 니키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몇 백만이 넘는 그야말로 화려한 외모로 편하게 사는 셀럽 중 하나이기에 자존감이 낮고 남자 친구가 결국 니키에게 차여서 자신에게 왔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더욱 더 니키에게 집착한다. 남자 친구 사이러스가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자고 적극적으로 설득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쉘비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도 싫고 마치 지금이 인생 절호의 기회가 여겨지기도 한다.

폭주한 친구 한 명이 갑자기 경찰에 사이러스가 동창생 둘을 죽였다고 거짓 신고하자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을 경찰이 오기 전까지 모두 정리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 모두 몰리게 된다. 쉘비는 절대로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기 싫은 데다가 사이러스와의 관계도 애매해서 갈등을 하고 되고 니키 입장에서는 그 동안 살아온 자신의 몸으로 당연히 돌아가기 원했기에 갑자기 마음이 돌변한 쉘비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기에 갑자기 폭주하는 포브스를 설득하여 모두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가게 설득한다. 

결국 경찰이 집에 들이닥친 마지막 순간에 기기를 다시 한 번 세팅하며 다시 몸이 바뀌게 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보다 더 엉망진창인 상태가 된다. 

그리고 다음 날 포브스의 여동생인 베아트리스가 흥분한 상태로 파티가 열린 대저택으로 들이 닥친다. 갑자기 베아트리스가 나오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대단한 반전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오빠인 포브스의 친구들에게 놀아난 베아트리스는 이후 그 충격으로 인해 정신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지는데 여동생을 위로한답시고 포브스는 자신과 팀원들이 만든 몸을 바꿔 주는 기기로 게임을 하게 되고 이 게임 상자의 위력을 알게 된 포브스의 여동생 베아트리스는 포브스와 몸을 바꾼 이후 포브스가 들어가 있는 베아트리스를 기절시키고 가방을 들고 동창생들을 만나러 간다.

그 목적은 복수일 수도 있고 단순히 미친 짓일 수도 있으나 처음부터 포브스는 포브스가 아니라 베아트리스였다. 아마 이게 제일 큰 반전일 텐데 그로 인해 베아트리스는 결국 데니스가 가진 신탁 자금은 모두 강탈하고 마지막에는 니키의 몸을 탈취하여 먼 여행길에 오른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몸과 누구나 부러워 할만한 재산을 가지고 도망을 가버린 거다. 

결국은 베아트리스 혼자서만 행복한 결말이긴 하고 향후 속편도 베아트리스 중심으로 이루어지긴 하겠지만 몸이 바뀐 터라 베아트리스 배우가 나오기 보다는 니키 배우 중심으로 진행이 될 게 뻔해 보인다. 어찌 되었든 니키는 수익도 높은 데다가 유명인사여서 돈 벌기도 쉬워서 한동안 베아트리스도 니키의 몸에서 나오기 싫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 사이러스와 쉘비의 관계성이 더 흥미롭긴 했다. 영화의 포문을 연 것도 사이러스와 쉘비인 데다가 마지막에서도 이 둘은 인상적인 결론을 도출해 낸다. 일단 사이러스는 전형적인 소심하고 치졸한 남자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여자 친구 쉘비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는 않으나 지금 상황에서 쉘비보다 더 괜찮은 여자 친구를 사귀기는 어렵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다. 그래서 르벤의 몸으로 니키의 몸과 관계를 맺기 직전까지 간 건 자신의 본능을 통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며 포브스의 몸으로 니키와 관계를 맺기 전에 실패한 건 그 영혼이 쉘비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이러스는 아주 개차반 남자 친구는 아니지만 결혼하기에 적합한 남자는 아니라는 결론에 모두가 동의할 거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만약 한다고 하더라도 쉘비는 안정권에 두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결혼 전에도 저러는데 결혼하면 더 심해지는 건 모든 남자들의 공통점이며 실제로 남자 들이 매춘업소에 가장 빈번하게 드나드는 때가 부인이 임신했을 때라는 통계 조사도 있는데 이런 거 보면 여자들이 왜 결혼을 점점 더 안 하기 시작하는지가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라 하겠다.

하지만 쉘비는 자존감이 그 누구보다 낮고 이를 잘 아는 사이러스는 쉘비를 절대 놓아줄 마음이 없다. 왜냐하면 본인도 쉘비 만큼이나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이러스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쉘비 만한 여자 친구가 없다는 걸 알게 되지만 항상 그렇듯이 모든 건 너무나 늦게 알게 된다는 거다. 이제 쉘비는 살인 누명을 쓴 사이러스를 구해줄 마음이 없고 본인의 인생을 살기로 마음 먹는다. 그 첫번째 단계는 개차반 남자친구는 사이러스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다른 관계성도 흥미롭지만 결국 감독은 사이러스와 쉘비를 가장 중심에 두었고 이런 식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연인에게 나름의 철퇴를 내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둘 다 서로에게 사랑과 관심이 식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나마 쉘비는 애정이 남아 있고 가발까지 쓰며 노력을 하지만 사이러스는 야한 동영상을 보며 사태를 피하려고만 한다. 그래도 포브스의 동생 베아트리스 덕분에 사이러스의 진심을 알게 된 쉘비는 어렵지 않게 사이러스를 놓아줄 수 있었다. 

내가 쉘비여도 니키의 몸을 가진 자신과 평생을 살아 가려고 하는 사이러스는 그 자체로 오만정이 다 떨어질 거 같기는 하다. 결국 쉘비와 같이 순종적인 성격에 니키의 몸을 원하는 게 남자 찐따의 속마음이라는 걸 쉘비가 드디어 알게 되어 속이 다 쉬원하지만 이런 커플이 현실에서도 생각보다 많아서 보면서도 남일 같아 보이진 않았다. 

영화 왓츠 인사이드는 제목 그대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지만 소셜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겉모습만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시대에서는 이러한 명제가 무의미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어찌 보면 니키도 본인의 아름다운 몸을 제외하면 딱히 별볼일 없는 존재이고 데니스나 르본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데니스의 유산과 니키의 몸을 가진 베아트리스가 결국 승리자처럼 보이는 게 작금의 현실을 제대로 풍자한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지금 외모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참 슬프다. 

총평 

기발하고 재미있다. 깊이는 없지만서도.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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