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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타임 컷 후기

수준 떨어지는 넷플릭스 공장 영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호러 영화 장르가 극장에서 꽤나 돈을 벌고 있다. 

국내에서는 여고괴담 이후로 제대로 된 공포 영화가 극장에서 빛을 못 보는 경우가 빈번하고 곤지암 이후로는 전무하다시피한데 그에 반해 미국은 1020 세대들이 꾸준하게 블룸 하우스 제작 호러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호러 영화는 유명한 배우가 나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요소가 거의 없어서 한 번 주목을 받으면 제작비의 몇 배 이상을 벌어 들이기도 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롱레그스 역시 의외로 북미에서 대단한 흥행몰이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넷플릭스도 타임 머신을 소재로 한 호러 영화 타임 컷을 하나 공개하긴 했는데 일단 이런 영화를 수요일에 공개한다는 점과 감독의 이력이 거의 없다는 점이 의심과 불안을 낳게 만들었다. 

아무리 저예산이 기본이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 수준이 있어야 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기본 이상은 되어야 분위기가 나오기 마련인데 타임 컷에 나오는 배우들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모두가 발연기르 보여주고 있다. 연기를 볼 때 가장 별로인 부분이 나 연기한다라고 작정하고 연기하는 배우들을 볼 때인데 이 영화가 그러했다. 

특히 연기도 못 하면서 작정하고 연기하려고 하는 거 자체가 한심스러울 수준인데 생각해 보자면 잘 나가는 젊은 배우들은 이런 영화에 나와서 이미지 소비를 절대 하지 않을 거 같기는 하다. 내가 에이전시나 배우 자체라도 제작사나 감독 보면 각이 나올텐데 굳이 이런 곳에 나와서 자신의 커리어를 망치고 싶지는 않을 거다. 

그래서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라면 어느 정도 재미는 있게 만들어야 했는데 그저 그런 영화도 아니고 심각한 돈낭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영화가 되었다. 시간 여행과 호러의 잘못된 만남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과거에 연쇄 살인마에게 살해를 당한 언니를 구해야 할 거라면 그 미션에 맞게 조금 진지한 태도를 취한다고 해도 너그럽게 용서해줄 만한데 갑자기 만난 언니와 2000년대 초반 패션쇼를 하지를 않나. 언니가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태연하게 있는 거 보면서 뇌가 없는 건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설프게 고증을 해서 더 어색한데 소품팀이 일을 열심히 한 건 알겠지만 미장센도 영화의 재미와 연결되지 않으면 크게 의미가 없다. 당시 유행했던 음악과 소품들이 나와서 잠시 잠깐 반갑긴 했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정작 영화 자체는 시궁창에서 찍은 것처럼 만들고 와서는 뻔뻔하기가 그지 없다. 

제작비가 없고 배우들의 연기나 존재감이 한심한 수준이라면 그저 무서워야 할 장면에서라도 어느 정도 긴장감을 주어야 할 터인데 그마저도 실패한다. 연쇄살인마가 나와서 몇 번이나 사람을 죽이고 위협하지만 그에 따른 긴장감이나 공포감이 전혀 없다는 것도 놀랍다. 수준 낮은 예능에서 사람을 웃기기 위한 쇼처럼 보일 정도여서 내가 뭘 보고 있는 건가 싶었다. 

완성도야 이미 포기했다고 하지만 재미마저 이렇게나 쉽게 포기하다니. 

이런 수준 낮은 영화가 최근 들어 넷플릭스에서도 자주 안 나오긴 하지만 지금까지도 종종 나오는 거 보면 재무 관리가 엉망진창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제발이지 이런 질 낮은 영화는 제발 좀 그만 만들었으면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영화인 건가. 

총평

이런 쓰레기 영화 좀 그만 만들어라 넷플릭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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