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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후기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일단 재미는 없다. 

이런 영화에 재미를 논하다니 라며 노할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영화 보면서 느낀 감상을 솔직히 말하지 못 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재미를 따지자면 이 영화를 보면 안 된다. 애초에 재미를 노리고 만든 영화도 아닌 데다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작품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만하다. 티빙에서 공개가 되었는데 홍보도 전혀 안 하는 거 보면 티빙 조차도 이 작품이 대중적으로 먹힐 거라고 보진 않는 듯한데 실제로 영화 순위를 봐도 티빙에서 상위권을 차지하지도 못 했다. 

게다가 이런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이미 극장에서 다 본터라 티빙에서 보는 사람은 나처럼 호기심 반 기대감 반으로 본 사람을 제외하면 많이 없지 싶다. 처음부터 칸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영화인 데다가 영화 평론가들이 입에 침을 튀기면서 환호를 한 영화여서 기대감이 낮았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상당히 대중적인 취향의 관객 중 하나로 어려운 영화를 봐도 잘 이해도 못 할 뿐더러 재미나게 보지도 못 한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그 동안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와는 결이 조금 다른 편이다. 다른 영화들이 대놓고 홀로코스트를 중심에 놓고 인간의 잔학성을 이야기 했다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관조적인 입장에서 홀로코스트를 조명한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효과가 좋아서 그런지 공포감은 더 극대화가 된다. 

특히 영화 말미에 아우슈비츠가 관광지가 되어 직원들이 청소를 하는 장면들이 조용하게 나오는데 이 부분도 나름 소름이 돋긴 했다. 수 많은 사람이 잿더미로 죽어 나간 시설이 100년도 지나지 않아 관광지로 전락하여 돈을 벌어 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소름끼치는 건 전혀 반전이 아니다. 아마 감독의 의도가 다분하게 들어간 장면이긴 한데 나도 살면서 한 번 정도는 아우슈비츠를 가보고 싶긴 해서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느리게 흘러가지만 그 안에서도 유대인들이 당한 피해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치 하얀 티셔츠에 묻은 라면 국물 자국처럼 말이다.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눈길이 가기 마련인데 흐린 눈 하고 보면 평화로운 독일인 가정이지만 조금만 더 눈을 뜨면 진실이 보인다. 독일인 장교의 가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표정이며 독일인 주인을 두려워한다. 과하게 굽신거리거나 하는 장면이 없으나 사소한 디테일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루돌프의 아내는 자신이 기분이 나쁜 때마다 집에서 일하는 어린 여자애들에게 언제든지 불태워 재로 만들 수 있다고 농담 섞인 협박을 한다. 본인은 농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듣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저승사자만큼이나 무서운 존재가 죽인다고 이야기를 하는 터라 가볍게 듣고 넘기기가 무섭다. 특히 어린 여자애를 밤마다 불러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루돌프 역시 소름끼치는 건 매한가지다. 

시체 태우는 냄새를 견디다 못해 갑자기 집으로 돌아간 장모님 역시 많은 걸 시사한다. 그동안 돈 잘 벌고 기세등등하게 살아오던 유대인들이 독일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 아우슈비츠에서 불태워지기에 잠시 기쁨을 맛보긴 하였으나 사람인 이상 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불태우는 환경에서 여유롭게 살아가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루돌프의 아내는 평범한 당시의 독일인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독일 사람들은 초반에만 해도 이런 만행이 이루어지는 걸 전혀 몰랐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히틀러가 선전용으로 유대인들을 비롯해 포로들을 죽이고 있다는 걸 거의 다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히틀러와 정당을 지지했으니 말이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하며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이지 말자는 의미로 할리우드에서는 잊을만하면 홀로코스트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만들어내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생각보다 더 멍청하고 역사는 역시나 무한으로 반복이 된다. 

지금은 오히려 당시의 유대인들이 가해자가 되어 가자 지구를 봉쇄하고 죄없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수준인데 애초에 이런 전쟁과 학살헤 명분은 만들기 마련이고 힘있는 자들이 마음대로 명분을 꾸며내기 때문에 반대 입장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적어도 독일의 유대인 학살은 당시에도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이스라을 관련 비판을 하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터라 그 누구도 반대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는 못한다. 

우리 역시 가자 지구 만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군사 정권이 점령한 미얀마의 소식은 이제 더 이상 들려오지도 않을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다. 외국을 볼 것도 아니고 국내에서만 생각해 봐도 대기업에서 백혈병으로 젊은이들이 죽어나가도, 20대의 나이에 지하철에서 수리를 하다가 사고로 안타깝게 죽어 나가도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반복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회가 정말 무섭다. 이제 바른 말을 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모두가 가볍게 즐기고 잊혀질 이야기들만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허송세월한다. 전세사기 사건으로 피해자가 자살을 한 기사가 나와도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남의 고통과 절망이 나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 시대이며 그 전달조차 큰 울림을 주지 않는다. 지금만 그런 게 아니라 과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살기 힘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 소득 이하의 삶으로 영위를 하는 중이기에 자신의 고통을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다. 나에게 여유가 있어야 남의 고통도 눈에 들어오고 동정을 할 수 있는 법인데 기득권층은 중산층이 많아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중산층은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고 그로 인해 기득권층이 얼마나 부패한 지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기에 요즘은 선진국도 중산층이 점점 더 몰락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출산율도 놀라울 정도로 전세계적인 추세로 낮아지고 있는데 인간은 소멸을 눈앞에 두고서야 뒤늦게 후회하겠지만 그럴 때에는 너무 늦었다는 걸 인지해도 정말 너무 늦었다. 

이제는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더 힘든 시기를 앞두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들은 멍청해지고 있다. 히틀러와 같은 인물은 이제 한 명이 아니라 온 나라에서 득시글 거리고 있다. 그래서 더 절망스럽다.

총평

재미는 없으나 의미는 있다.

평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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