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웃어야만 하는 여성들
여성들이 일상 생활에서 느낄 만한 가장 실제적인 공포를 이보다 더 현실적으로 묘사한 영화가 있었을까.영특하고 영민한 배우인 안나 켄드릭의 감독 데뷔작 영화 오늘의 여자 주인공은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 로드니 알칼라를 소재로 실화를 바탕에 두고 있다. 연출도 독특하고 실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특이해서 이게 정말 실화일까라는 생각이 영화보는 내내 들었는데 다 보고 나서 로드니 알칼라가 살해했다고 추정되는 여성의 숫자가 무려 130명 정도가 넘고 경찰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나 역시 심한 좌절감을 경험했다.
여성이 평소에 느끼는 공포를 이렇게까지 실질적으로 경험한 역사가 없어서인지 보면서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여성이 험한 일을 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영화나 드라마는 지나칠 정도로 많이 보았고 지금도 무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런 영화들의 시각은 항상 가해자의 시각이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바라보고 느끼는 쾌감까지 카메라 밖으로 전달이 될 정도여서인지 보면서도 그런 장면에서 피해자의 시선에서 느낄 만한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안나 켄드릭은 철저하게 피해자의 시선으로 가해자를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신기하게도 그 수많은 피해자들이 다 달리 보인다. 남자 감독들이 만든 작품들을 보면 여성을 죽이는 행동 자체가 하나의 오락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하기에 그런 장면을 보면서 죄책감은 커녕 오히려 아드레날린이 느껴진다. 이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마치 여성을 죽이는 게 하나의 게임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나는 그런 장면을 보면서도 별달리 불쾌한 느낌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은 여성 만이 아니라 범죄 행위를 하나의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기 때문에 죽음이나 범죄가 너무 가볍다.
오늘의 여자 주인공은 1970년대 후반의 미국이 배경이긴 하지만 지금에 와서 적용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여성이 남성을 죽이면 형량을 높게 받지만 남성이 여성을 죽이면 상상도 못할 핑계나 변명이 판사의 심금을 울린다. 평소에 정신 건강이 안 좋았다거나 아니면 술을 마셨다거나 하면서 형량이 줄어 든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금 거리를 활보한다. 황당하게도 젊은 남성일 경우 의대생이나 대학생일 경우 그 남자의 미래를 위해 무죄라는 기이한 선고가 나오기도 한다.
판사마저 피해자의 미래보다 같잖은 가해자의 미래를 더 걱정하는 게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의 현실이다. 이 끔찍한 현실 앞에서 안나 켄드릭은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그렇게 관대하고 아련한 판사와 대중의 시선이 끔찍한 남성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로드니 알칼라같은 사람이 끊임없이 전세계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어이없는 관대함에 있다.
요즘 사회 뉴스를 보면 여자 친구의 헤어짐에 분노하여 그 여자 친구는 물론 여자 친구의 가족까지 죽여 버리는 젊은 남성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권장하고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사회가 과연 상식이 있는 사회인가. 여성들이 보다 더 안전하게 연애를 할 수 있고, 사소한 범죄를 저질러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게 더 시급한 일이지 않을까.
여성들은 웃는다.
행복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남자들 앞에서 웃고 원하지 않지만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성이 무슨 일을 할지 몰라도 몸을 허락한다. 전혀 즐겁거나 그 남성이 매력적이지 않더라도 자신과 한 번 자보려는 남성이 그 목적을 달성한 후 자신에게 관심이 줄어들기 바라면서 잠깐의 불쾌함을 참고 견딘다.
주인공 셰릴 역시 로드니 앞에서 살기 위해 미소 짓는다. 남자들은 다 아기같으니까 아기처럼 대해줘야 한다. 남자가 아기 같은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남자를 아기처럼 뭐든지 해도 용서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남성들은 제멋대로 행동하게 만들고 기본 상식도 통하지 않게 만든 건 바로 우리다.
이 영화는 그 동안 보아온 영화와는 연출 방식이나 형식이 굉장히 다르다. 하지만 어떻게 전개가 될 지 감이 안 오는데도 불구하고 흥미를 돋군다는 점에서 감독이 굉장히 탁월하게 방향성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다소 뻔한 연쇄살인범 이야기를 이렇게나 여성의 시각에서 뛰어나게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안나 켄드릭의 다음 연출작도 기대가 된다.
총평
의외의 수작,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는다.
평점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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