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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후기 결말

 그대가 나를 망친다 해도 영원히 사랑하리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그야말로 보통이 아닌 로맨스 영화다. 

언뜻 보면 델마와 루이스 같기는 하지만 델마와 루이스가 시대적인 이유로 인해 보여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아 제작사를 살펴 보니 역시나 A24에서 만든 영화였다. 평범한 시나리오는 아예 제작조차 하지 않는 제작사 중 하나인데 그래서 그런지 A24에서 만들면 일단 호기심이 동하긴 한다. 

감독인 로즈 글래스 감독도 인상적이지만 역시 이 영화는 두 주연 배우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케이티 오브라이언의 케미도 상당히 좋은 편이고 특히 케이티 오브라이언의 몸을 통해 보여주는 육체미는 당황스럽지만 묘하게 성적인 흥분을 불러 일으킨다. 원래 영화에서 여자들끼리 키스신이나 정사신이 나와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편인데 초반 루와 잭키의 애정 행각은 심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흥분시킬 만하다. 

특히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존재감이나 매력 그리고 연기력이 대단해서 더 놀라웠다. 아역 배우 출신으로 이 정도로 연기파로 성장한 배우도 드문 편인데 인지도가 굉장히 높고 샤넬의 핵심 앰배서더이지만 예술 영화나 독특한 영화에만 출연하는 걸로도 유명한 배우다. 마블같은 히어로 영화나 대놓고 상업 영화에는 나오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연기만 하는 모습도 멋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보니 돈은 신경 안 쓰고 본인이 하고 싶은 연기나 작품만을 하는 듯한데 보통 이 정도 되려면 어느 정도 돈을 벌어 놓은 중년 배우들이나 가능한 부분인데 어린 시절 히트 시리즈에 출연하며 돈을 많이 벌어 놓은 게 도움이 되기도 했겠지만 본인이 상업 영화 시리즈에 너무 어린 나이에 출연하면서 가진 회의감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특이한 건 같은 시리즈에 나온 로버트 패틴슨 역시 이제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거다. 보통 유명 프랜차이즈 시리즈에 나온 배우들의 이후 커리어가 굉장히 안 좋고 배우 생활을 안 하기도 하는 등 부침을 겪는 반면 로버트 패틴슨이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그야말로 놀라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어서 괜히 내가 다 뿌듯하다. 

영화 패닉 룸 이후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거의 처음 보는데 영화 미녀 삼총사3는 연기력을 논하기 어려운 드라마이다 보니 논외로 치고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영화에 나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며 연기력도 인정을 받고 있는데 제일 멋있는 건 역시나 러브 라이즈 블리딩 같은 영화에도 아무 스스럼없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중심을 딱 잡아서 안정감을 부여하는데 아마 루로 인해 아버지와 형부가 얼마나 악마적인지가 제대로 드러난다. 만약 근육질의 잭키 혼자만 나왔다면 이들의 포악무도함이 생각만큼 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약물을 아무리 사용한다고 하지만 여성과 남성의 근본 피지컬 차이는 뭇하기 어려운 부분이며 영화 초반 잭키가 자신과 술을 마시려고 하는 근육 헬창과 대치하는 장면에서 남자에게 한 대 맞고 휘청이는 부분에서 그런 압도적인 힘 차이가 드러난다. 

루의 도움으로 근육 생성에 도움이 되는 약물을 투여받게 되지만 아무리 약물을 한다고 해도 여성이 싸움으로 남성을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긴 하다. 그런 현실에서 아무리 잭키가 강하다고 한든 남성성으로 무장한 아버지와 형부는 이기기가 거의 불가능한 존재였는데 잭키가 갑자기 흑화하며 근육몬이 되어 이들을 처리하는 모습은 그래서 판타지이고 당연히 그래서 더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 

힘으로 여성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남성들에게 강력한 한 방을 날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남성이 여성을 제압하는 모습과 흡사 유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잭키가 거인이 되어 등장한 모습에서 보자면 실제로 잭키가 거인이 되었다기 보다는 루의 시각에서 보는 잭키의 모습이 마치 걸리버를 조우한 것마냥 신비한 경험 아니었을까. 어디에서도 만나보기 힘든 잭키같은 인물을 만난 루에게 잭키는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진다고 해도 루는 잭키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이미 약물로 인해 맛탱이가 가기 시작한 잭키 역시 자신을 조건없이 좋아해주는 루가 좋아서 죽을 지경이다. 특히 잭키는 고향을 떠나서 가족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태이고 교육 수준도 높지 않아서 몸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면 변변한 직업도 구하기 어렵다. 그런 잭키에게 루는 거의 모든 걸 제공해준 은인같은 사람이다. 그런 루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언니 베스가 죽기 직전까지 형부에게 맞아서 죽을 뻔하자 대신 복수를 해주기 위해 형부를 맨주먹 하나로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누군가는 왜 이 영화에는 제대로 된 남자가 한 명도 없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텐데 당시 시대 배경을 생각해 봐도 그렇고 실제로 통계를 봐도 제대로 된 남자가 많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이고 우리 나라도 사회 뉴스면을 보면 남자에게 칼을 맞거나 죽임을 당한 여자는 많아도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걸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남자는 화가 나면 일단 자신이 사귀거나 혹은 자신이 고백했는데 받아 들여주지 않은 여성을 죽일 생각부터 하는 이 기묘한 구조 자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데 그러한 현실에서 잭키의 힘은 여성의 또 다른 욕망을 상징한다.

여성들이 아마 육체적인 힘만 있었다면 이미 남자들을 거의 다 죽이지 않았을까. 아니 분명히 그랬을 거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자만 적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은근슬쩍 루를 이용하기 위해 루의 약점을 이용하는 데이지 역시 역겹기는 매한가지다. 데이지는 아무 생각없이 사는 전형적인 멍청한 여성을 그리고 루의 언니 베스는 남자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며 평생을 맞으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여성을 상징한다. 

루가 마지막 장면에서 데이지를 죽이는 장면은 이 감독이 그렇게 멍청한 여성을 얼마나 혐오하고 있는지가 제대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요즘 시대에서 비교해 보자면 남성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인터넷 방송에서 아슬아슬한 수위로 생각없이 자신을 성적 대상화하는 여성들이 데이지와 비슷한 결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의 지위와 권리를 높일 생각은 없이 그저 남성들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를 제공하면서 여성이라는 지위를 종국에는 더 떨어 뜨리는 덜 떨어진 인물들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루와 잭키의 관계는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잭키는 높은 확률로 사고를 치고 다닐 확률이 높으며 다혈질인 성격이 이를 드러낸다. 루는 아마도 평생 언니 베스를 걱정해 온 만큼 잭키를 걱정하며 지낼 확률이 높다. 아니 분명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잭키는 루의 아버지나 형부처럼 자신들의 욕망 만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거나 여성을 하대하며 살아오지 않았다. 베스의 남편을 죽인 것도 베스에게 측은지심을 느꼈기 때문이며 데이지를 총을 쏜 것 역시 협박 때문이지 않은가. 

잭키를 이 정도로 위협적이게 만든 건 결국 남성들이다. 오히려 이런 세상에서는 남성을 배제하고 루와 잭키만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평화가 찾아 올 수 있으나 세상에 이 둘을 가만히 놔둘리가 없으니 둘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제일 안타까운 지점이었다. 그래도 데이지를 제대로 죽이지 못한 잭키를 대신해 잭키에게 말도 없이 데이지를 죽여 버린 루처럼 서로 상부상조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가기를 빌어 본다. 

총평 

아드레날린이 폭발하고 그로 인해 이야기도 붕 뜨지만 매력적이기는 하다.

평점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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