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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섀도우의 13 후기 결말

덜어냄의 미학이 아쉽다

넷플릭스를 통해서 동남 아시아 영화들을 꽤나 챙겨보게 된다. 넷플릭스가 가진 희소한 순기능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OTT가 아니었으면 절대 보지 않았을 나라들의 영상물들을 보게 만드는 힘은 분명히 있는 듯하다. 물론 여전히 자국어와 영어로 된 콘텐츠가 더 친근하고 사람들 역시 많이 보긴 하지만 가끔 보면 영상 기술도 많이 발전하고 나라마다 격차가 사라지고 있어서 말하지 않으면 크게 차이점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영화 섀도우의 13은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먼저 상영이 되고 나서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인도네시아 액션 범죄 스릴러 장르 영화로 러닝 타임이 2시간 반 가까이 되는 다른 인도네시아 액션 영화와 비슷한 장르의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넷플릭스의 자본으로 꽤나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 영화인데 인도네시아 범죄 영화 특유의 잔인함과 스케일로 무장한 영화다. 

섀도우라는 돈만 주면 뭐든지 해주는 조직의 일원인 13이 갑자기 폭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몬지라는 소년이 갑자기 사라지자 말을 튼지 이틀 밖에 안 되는 소년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 거대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다소 황당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보면서 영화 아저씨도 떠오른다. 성인이 미성년자를 구해내는 구원 서사는 우리 나라에서도 한 때 유행했었고 영화 레옹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포맷이다. 

이런 포맷은 이제 할리우드는 물론 한국에서도 잘 나오질 않는다. 

그만큼 사골 소재라는 건데 동남아시아에서는 이게 상당히 먹히는지 최근 들어 이런 비슷한 소재 영화를 정말 많이 보았다. 나 역시 각본에 대한 기대보다는 액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영화 섀도우의 13을 보기 시작한 건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상당히 만족스럽다. 물론 이게 2시간 반동안 거의 무한 반복되기 때문에 조금 지겹다는 단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다. 

물리적 그리고 체력적인 한계가 있는 여성 그것도 소녀와 비슷한 어린 여성이 모든 빌런을 무찌르고 격파해 나가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가능한 건 인도네시아에서의 여성 인권이 그다지 높지 않고 이러한 설정 자체가 굉장히 판타지라는 데에 기인한다. 우리 나라도 한 때 재벌집 아들과 미혼모가 결혼하는 이야기가 일일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로 다루어지고는 했는데 가끔 보면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기 보다는 환상을 반영한다고 보는 게 맞는 듯하다. 

어느 정도 판타지에 젖어 들면서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사회에서 이제는 일일 드라마도 더 이상 그렇게 허무맹랑한 소재를 다루지는 않는데 아예 사라졌다고 보긴 어려우나 일일 드라마도 요즘 시청률이 더 이상 안 나오는 거 보면 중년 여성들도 더 이상 그런 판타지에 홀라당 넘어가시지는 않는다. 인도네시아는 종교도 그러하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나 이런 게 낮을 수 밖에 없기에 오히려 이런 이야기가 더 각광을 받는다는 설정이 조금 흥미로웠는데 존 윅의 10대 소녀 버전이라고 할 만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건 그래서 재미있다. 

물론 영화 존 윅이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건 절대 아니다. 

영화는 액션이나 촬영을 제외하면 각본의 부실함으로 인해 봐주기 힘들긴 하다. 특히 나는 한 시간이 넘어가면서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하차를 하려다가 그래도 본 시간이 아까워서 결말까지 다 보긴 했는데 역시나 내가 예상한대로 교관과 마지막 결투를 하고 후속편까지 예고하는 14의 등장은 좀 진저리가 쳐질 정도였다. 새로운 수업을 하러 마스터와 함께 떠나는데 노골적으로 속편을 예고하고 있긴 해서 흥행을 한다면 충분히 속편이 나올 수 있을 듯한데 속편은 그다지 보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 아시아 영화의 단점이라면 덜어냄의 미학이 없다는 사실이다. 액션도 과하고 러닝 타임도 과하고 연출도 과하다. 각본을 조금 덜어내고 러닝 타임을 한 시간 반 정도로 만드는 게 더 비용 효율적이고 재미 면에서도 훨씬 더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텐데 온갖 이야기를 다 넣으려다 보니 관객들은 보다가 지친다. 이야기가 탄탄한 것도 아니고 유치원생들도 보면서 결말이 뻔히 보이는 이야기로 두시간 반이나 이끌어 나가는 거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감독만 모른다. 

괜찮은 액션도 반복해서 보다 보면 질린다. 애초에 더 이상 새로운 액션이 계속 나올 수가 없기도 하고, 보다 보면 할리우드처럼 거대 자본을 들여서 보다 더 큰 액션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에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빌런이 3명이나 나오는데 2명으로 줄이고 한 시간 45분 정도로 만드는 게 더 나았을 법하다. 영화가 러닝 타임이 길다고 해서 괜찮아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두시간이 넘는 영화를 만들려면 적어도 각본이라도 조금 괜찮게 짰어야 하지 않나. 

그래도 액션과 액션을 담는 촬영 만큼은 촬영 기술의 발달로 인해 볼만하긴 하다. 

총평 

이제는 각본도 신경써야 한다. 

평점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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