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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탈옥 사랑의 도주 후기 결말

 잘못된 곳에서 잉태된 진정한(?) 사랑의 결말.

운명적인 사랑을 교도소에서 만난 케이시와 비키. 

이들이 특이한 점이라면 케이시는 교도소에서 복역중인 재소자 그리고 비키는 교도관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별의별 황당한 일로도 감옥을 많이 가기 때문에 케이시도 그러한 재소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케이시는 명실상부 위험 인물로 자신의 전 여자 친구를 총으로 쏘고 키우던 강아지를 총으로 죽인 경력도 있는 데다가 도주하겠다고 아무 연관도 없는 일반인들에게 총을 난사한 그야말로 위험한 범죄자의 전형이다. 

원래는 교도소에서 철저하게 격리가 되었어야 하지만 미국은 교도소로 보내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 여력이 안 되었고, 그로 인해 성실하게 일하지만 사무치게 외로웠던 비키와 눈이 맞는다는 설정이 말이 안 되어 보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걸 다 알려진 터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국의 교도소 시스템을 좀 알아야 한다. 나는 어쩌다 보니 관련 다큐멘터리를 좀 챙겨본 사람이어서 미국 교도소 시스템이 얼마나 개판오분전인지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이 정도로 허술할 거라고는 상상한 적이 없어 놔서 놀랍기는 했다.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교도소 관리를 탓하려는 목적은 아니어서 자세하게 언급이 안 되어 있긴 한데 놀라지 마시라.

미국은 사설 교도소라는 게 존재하는 나라다. 

한 마디로 대기업에서 교도소를 운영하는 나라 중 하나라는 거다. 이런 식으로 교도소를 운영하는 나라가 은근히 있기는 한데 미국같은 나라에서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는 게 조금 이해가 안 가긴 한다. 미국은 유색 인종을 교도소에 의도적으로 넣기로 합의라도 한 나라인데 실제로 유색 인종이 교도소에 갇힐 확률이 백인보다 월등하게 높다는 통계 조사 자료도 있다. 

여기에 나오는 케이스 역시 범죄 행위만 봐도 만약 그가 흑인이나 히스패닉이었다면 아마 범죄 현장에서 사살을 당했을 거라고 본다. 백인이었기에 그 수많은 죄를 저지르고도 총상 한 번 입지 않았던 건데 흑인은 경찰에게 소리만 질러도 사살되지만 백인은 총기를 들고 위협해도 총상 한 번 입지 않는 기막힌 미국의 현실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 했다. 

탈옥 사랑의 도주의 배경이 된 교도소 역시 사설 교도소이며 정부에게 세금을 받아서 운영되는데 정부에서 세금이 넉넉하면 직접 관리했지 기업에게 맡기지 않았을 테니 당연하게도 운영 자금이 부족하긴 하다. 우리 나라는 교도관이면 공무원이지만 미국은 일반 회사원과 다를 바가 없고 당연히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않는다. 나름 놀라우리만치 허술하게 관리되는 곳인데 당연하게도 교도관들의 수준도 낮고 재소자들 역시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복역 중인 게 미국 교도소의 현실이다. 

태국이나 필리핀 같이 비인간적이지는 않으나 미국이라는 나라의 수준을 생각해 보면 분명히 한참 뒤떨어지긴 한다. 밥이 부실하게 나오는 건 당연하며 안에서 살인을 당한다고 해도 전혀 놀라울 일이 아닐 정도로 관리도 엉망이다. 그 와중에 교도소는 사기업이다 보니 돈을 벌어야 해서 재소자들이 아주 저렴한 일급을 받고 노동을 거의 무료 수준으로 제공하고 있다. 어찌 보면 값싼 유색 인종 노예를 만들기 위해 그 많은 인원을 감옥으로 보내고 있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그렇게 교도관과 재소자들을 쥐어 짜다 보니 주가는 항상 고공 행진이라고 하며 트럼프 대통령 테마주가 바로 교도소 관련 기업이라는 건 웃지 못할 사실이다. 

자, 이런 상황에서 외로운 교도관과 머리가 비상하게 좋고 나름 사랑꾼인 재소자가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델마와 루이스가 되고 싶었던 케이시와 비키.

미리 앞서 이야기하지만 나는 집안 어르신 중 한 분이 교도관 출신이어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는 한데 실제로 교도관과 재소자가 눈이 맞는 경우가 아주 희박할 정도로 드물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없는 일은 아니라고 하며, 심지어 재소자가 사기 혐의로 복역 중인 걸 알면서도 큰 돈을 맡겼다가 낭패를 보는 교도관도 실존한다고 하니 인간의 믿음과 신뢰라는 건 어찌 보면 그 무엇보다 가지고 놀기 쉬운 장난감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듯하다.

케이시 역시 한 번 떠 보느라 비키의 뒤태를 한 번 칭찬했는데 교도소 내에서 꽤나 높은 직책이었던 비키는 원래대로라면 화를 내야 했지만 당시 너무나 외로웠던 탓에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고 다른 재소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오히려 이를 듣고 좋아했다는 거 보면 이미 그 즈음부터 비키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음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아마 그 순간 케이시는 비키를 꼬시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더 관심을 표현했을 테다.

신기한 건 비키도 본능적으로 이러한 관계가 얼마나 위험한 지 알고 있었기에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던 다른 교도관들과도 전혀 공유하지 않았던 데다가 감옥 안에 있던 케이시와 통화하기 위해 대포폰까지 만드는 치밀함을 보인다. 아마 머리로는 이러한 기묘한 관계가 결국은 파멸일 거라고 생각을 했을 테지만 케이시는 상상 이상으로 외로운 사람을 잘 구워 삶는다는 사실을 아마 비키도 몰랐으리라. 

케이시는 종신형을 선고 받은 인물이고 사형수가 될지도 모르는 터라 비키는 사랑하는 케이시를 구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고 다른 재소자들을 산책 보내고 더럽고 냄새 나는 재소자들의 방 안에서 케이시와 은밀한 데이트를 즐긴 사실도 알려졌다. 키도 크고 남자다운 케이시를 보고 아마 비키는 정신을 못 차렸으며 케이시는 당시 38세 그리고 비키는 56세여서 젊은 남자가 자신에게 성적인 매력이 있다고 하니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특히 첫 결혼을 한 이후 남편의 마약 중독 문제로 이혼하고 두 번째 연인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골로 가며 외로움이 극에 달한 비키 앞에 갑자기 나타난 케이시는 하늘에서 내려준 인연이라고 착각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거의 1년 여간을 케이시와 함께 탈옥을 준비하던 비키는 교도소에서 오래 재직한 교도관 답게 정말이지 치밀하게 모든 걸 준비한다. 심지어 탈옥을 하기 전에 케이시와 위험한 예행 연습을 하는 대담함까지 선보인다. 

그렇게 집도 팔고 교도관도 은퇴하면서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한 당일 비키와 케이시는 계획을 실행한다. 그리고 그 허술한 계획은 그보다 더 허술한 시스템 아래에서 성공한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도주는 온 미국을 뒤흔든다. 전국 뉴스에 보도되는 건 물론 온갖 매체에서 찾아 와 이들의 행방에 대해서 보도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열흘이 넘도록 경찰에 잡히지 않았으나 이들이 이동한 거리는 고작 280km 정도라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열흘이면 멕시코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까지 간다고 해도 그리 놀랍지는 않은데 둘 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자신들이 도망친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착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전국 뉴스에 나오다 보니 당연히 여러 제보가 있었고 경찰도 어렵지 않게 이 둘이 머무는 모텔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시작된 추격전 끝에 둘은 붙잡히지만 안타깝게도 비키는 경찰에 잡히기 직전 자신이 가진 총으로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병원에서 목숨을 잃는다.

당시 케이시가 비키를 걱정하며 경찰에게 그녀의 안위를 물은 걸 보면 케이시가 비키를 어느 정도 사랑은 했나 본데 케이시와 친했던 동료의 말을 들어 보면 실제로 사랑꾼이어서 자신에 마음에 들면 사랑을 쏟아 붓는 타입이라고 하는 거 보면 그 사랑에 의도는 숨겨져 있을 지언정 거짓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비키 역시 오랜만에 찾아온 사랑 앞에 정신을 못 차렸고 결국 비키 자신은 죽었으나 죽기 직전까지 누군가를 사랑은 해 보았으니 나쁘지 않은 결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나는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일단, 외로움을 타는 비키를 이용한 건 케이시였고 정말 둘이 사랑을 해서 도피를 할 거라면 최소한 미국을 떠나 캐나다나 멕시코로는 갔었어야 하지 않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열흘 동안 그 거리 정도 밖에 움직이지 않은 게 믿기 힘들 정도인데 둘이 무슨 생각을 하고 도주를 한 건지는 비키가 죽은 마당에 자세히 알기는 어려우나 둘 다 생각보다 더 멍청했던 게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조금 더 치밀한 사람이 있었다면 더 멀리 도망가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 정도 머리가 된다면 애초에 둘의 사랑은 성립하지 않았겠지.

처음에는 비키나 케이시나 마음껏 비웃어 주려고 했는데 비키도 생각보다 진심이었고 케이시 역시 그러해서 마음껏 비웃기도 참 마음이 불편한 사연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비키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이 도주의 끝을 정말 예상 못 했을까?

하지만 이유는 몰라도 왜 비키가 결국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지는 이해가 간다. 본인이 교도관으로 10년 이상 재직한 만큼 교도소가 어떠한 곳인지 제일 잘 알았을 테고 본인이 잡히면 무조건 교도소에 들어가 오랜 기간을 썩어야 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을 테다. 그럴 거면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예상했을 테고 어색한 솜씨지만 본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것만큼은 진심이었고 그녀의 바램대로 비키는 결국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차라리 국립 공원이나 산 속으로 들어가서 5년 정도 살다 나오면 사람들도 잊고 나름 조용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테고 미국의 경찰 역시 수사하다가 포기했을 텐데 겨우 이웃 마을 모텔에서 지낼 거면서 잡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초등학생도 안 할 거 같은데 그 부분이 가장 어이가 없기는 하다. 

최근에 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서 가장 황당한 소재이긴 한데 결말이 둘이 정말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터라 더 놀라웠다. 이런 식의 결말을 예상한 것도 아니었고 비키라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아 놀라웠지만 어찌 보면 이미 시작할 당시부터 비극이 될 거라고 둘 다 어렴풋이 아니 적어도 비키는 예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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