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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투명 인간이 된 희생자 엘리자 사무지우 사건 후기

 야만의 나라에서 여성의 삶이란

별 생각없이 보기 시작한 브라질 다큐멘터리 영화 투명 인간이 된 희생자 엘리자 사무지우 사건은 구성 자체는 단순한데 상상 초월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구성 자체가 특별하지는 않은데 브라질의 여성 인권 현실과 축구에 얼마나 미친 나라인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숨겨진 희생자들이 많이 생기는 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엘리자 사무지우는 여성 골키퍼를 꿈꾸는 빈민가 출신 여성이었다. 

브라질은 아직도 빈민층의 비율이 생각보다 높은 편이다. 그나마 룰라 대통령 당시에 많은 빈민들이 중산층으로 올라서긴 하였으나 아직도 브라질의 빈민 비율은 타국 대비 높다. 그리고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한 세대 안에 해결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브라질은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나라 중 하나인데 이런 빈민층 비율이 높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빈민층은 직업이 없고 그로 인해 소득이 낮다 보니 범죄에 연루될 확률이 높고 소매치기같은 일을 할 가능성도 높다.

나의 지인도 리우 올림픽 때 여행 갔다가 본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여행 친구들의 소지품이 하나씩 다 없어진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는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작은 가방 하나가 그리고 지갑 하나가 그리고 시계 하나가 사라지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한다. 브라질은 여행하기에는 좋은 나라이지만 일본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다니면 중요한 무언가 하나는 내 시야나 손에서 사라지는 나라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엘리자와 브루누는 빈민층 출신이다. 

둘 다 축구 선수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엘리자는 여자였고 브루누는 남자였다. 둘 다 골키퍼였으나 브루누는 브라질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될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촉망받는 젊은 축구 인재였고 엘리자는 촉망받는 축구 선수였으나 여성이라는 이유 그리고 빈민층 출신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었고 도시로 나와서 돈 때문에 포르노 영화에도 출연하고 성접대 관련 서비스에도 잠시잠깐 몸을 담았었다. 

그렇게 둘은 지인의 파티에서 만나게 되고 이내 사랑에 빠진다.

뭐 이것도 엘리자 입장에서 보면 사랑이긴 하지만 브루누 입장에서 보자면 쓰러 뜨리기 쉬운 여성 한 명을 건진 거나 다름 아니다. 그 당시 브루누는 약혼녀가 있는 상태였고 약혼녀를 제외한 여러 명의 여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당시 브라질 축구 선수들은 애인이나 부인이 있어도 여러 명의 여성과 동시에 다른 관계를 맺고 파티에서 난교를 하는 게 보통이었다고 하니 브루누가 많은 여성과 관계를 가지고 방탕하게 생활한 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엘리자가 임신을 하면서 생긴다. 

보통이었다면 브루누가 협박을 하면 돈을 조금 받고 그야말로 나가 떨어질 수 있었을 텐데 엘리자는 생각보다 강인한 여성이었고 자신의 권리를 인정 받으려고 백방으로 노력 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본인을 온라인에서 창녀라고 불러도 언론에 나가서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브루누가 얼마나 방탕한 생활을 하고 얼마나 나쁜 남자인지를 온 세상에 알렸다. 축구 선수의 방탕한 생활을 모두가 아는 바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정신 나간 생활을 할 거라고 일반 대중들은 생각하지 못 했기에 엘리자의 폭로는 충격이었다. 

게다가 브루누는 엘리자에게 공공연하게 엘리자와 가족 모두를 살해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처음에는 허풍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큐멘터리 보면서 저게 허튼 말은 아니었구나 싶긴 했다. 실제로 브루누를 따르는 빈민가 고향 친구들이 있었고 이들은 브루누에게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먹고 살며 브루누가 시키는 일이라면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 일을 제외하고는 무조건적으로 다 해주었다고 보면 된다. 

빈민층 출신 부자와 가난한 기생충 친구들

과거에 이런 글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흑인 사회에서 유명한 연예인이 나오면 가족에 사촌은 물론 사돈에 팔촌 그리고 이웃 사촌이나 친구들까지 빌붙어 먹으려고 난리도 아니며 실제로 이런 경우 때문에 파산을 하는 유명한 가수도 있었다고 하던데 이게 특이한 흑인 문화라는 이야기가 나왔었고 이해가 안 가는 점은 아니었는데 브라질 빈민층 출신 부자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문화가 나오는 거 보면 문화적으로 성공할 기회가 아주 낮은 계층에서는 이런 식으로 빌붙기가 어찌 보면 하나의 생존 도구라고 볼 수 있다.

브루누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빈민층 출신으로 거의 유일하게 유명한 축구 선수로 성공한 선수였는데 그러다 보니 마찬가지로 사돈에 팔촌까지 먹여 살리게 되었고, 자신의 심복이나 노예처럼 부리고 다녔다고 볼 수 있다. 

엘리자의 시체가 끝내 발견되지 않았기에 정확하게 엘리자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자신의 명예를 언론에 나가서 계속 깍아 먹는 엘라자에게 분노한 브루누는 자신의 빈민 출신 친구들에게 엘리자의 처리를 부탁했고 이들은 충성스럽게 엘리자를 교살하고 시체를 흔적도 없이 처리해 버린다. 워낙에 깔끔하게 처리해서 그런지 대대적인 수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의 시체는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자 살인 현장을 보고 겁에 질린 어린 소년들에 의해서 이 진상이 밝혀진 건데 시체가 나오지 않다 보니 브루누는 겨우 22년 형을 선고 받고 지금은 감옥에서 나와 다시 축구 선수로 복귀할 예정이라고 한다. 관련자들도 지금은 다 나와서 잘 살고 있으며 22년형을 받은 브루누조차 10년 조금 넘게 살고 나왔다 보니 브라질의 사법 체계도 알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브루누가 엘리자를 죽인 게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축구에 미친 브라질 사회나 국민들은 브루누보다는 브루누를 유혹해서 명예를 실추시키려 한 엘리자를 대놓고 비방하면서 브라질의 여성 인권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우리 나라도 크게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브라질의 여성 인권은 거의 벌레보다 못한 수준이어서 목숨을 걸고 싸운 엘리자가 다시금 대단해 보였다. 

엘리자는 아직 어려서 설마 하니 자신이 죽임을 당할 거라고 생각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 했겠지만, 만약에 브루누가 유명한 축구 선수가 아니었고 엘리자가 언론에 브루누의 진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면 아마 이 사건은 경찰에서 수사조차 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나마 브루누가 워낙에 유명했고 엘리자도 적극적으로 대응했기에 유명한 사건이 되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았기에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라도 한 거 아니었을까. 

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여성은 전세계에서 남성들에게 실시간으로 살인을 당하고 있고 이게 일상처럼 되어 버렸다. 안타깝지만 이게 엄연한 현실이라는 게 놀라우면서도 경악스럽다. 이제는 무언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이 모든 현실에 쉽게 바뀌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새삼 신기한 건 임신은 여자 혼자 하는 게 아닌데 왜 이걸 이슈로 만들면 여성 혼자만 욕을 먹고 모든 책임을 지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제일 큰 책임은 남자에게 있는 거 아닌가. 언제가 되어야 기본적인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될까.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가능하기나 할런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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