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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추천 아버지의 세 딸들 후기 결말

이미 영화제에서 공개되고 난 이후 호평 일색이었던 영화 아버지의 세 딸들을 감상했다. 기대를 어느 정도 하고 본 거긴 한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아자젤 제이콥스 감독의 영화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모인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세 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배우 캐리 쿤과 엘리자베스 올슨 그리고 나타샤 리온의 그야말로 완벽한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로 예상 하다시피 연극 톤의 느낌이 많이 들어간 영화이고 영화 자체의 예산은 배우 출연료를 제외하면 그렇게 많이 들어갔을 거 같지는 않다. 넷플릭스는 원래 드라마나 영화 제작비를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 그래서 이 영화의 정확한 제작비를 알기 어렵지만 배경이 거의 집이고 야외 촬영도 아파트 정원 정도이기 때문에 예산이 크게 들어갔을 영화로 보이진 않으나 배우들의 연기와 각본으로 대단한 긴장감과 재미를 만들어 내는 영화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감상한 영화 중 가장 만족스럽다고 표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원래 이런 연극 톤 영화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데 공감이 가는 내용 그리고 인물이기에 더 감정 이입을 누구보다 쉽게 할 수 있었다. 특히 내가 나이가 이제 어느 정도 먹어서 그런지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어느 정도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나도 최근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는 아직 건강하시고 나는 형제 자매도 없는 사람이지만 죽음이라는 소재 그리고 가족 간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구성 자체가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 역시 암 수술 이후 급격하게 노쇠하였고 최근에는 치매 초기 증산도 보이면서 남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늙고 병들고 몸이 쇠락해 간다. 자연스러운 거지만 그런 걸 보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나 역시 늙어 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인다. 

부모님의 노쇠는 나의 노쇠와도 연결된다. 나 혼자 시간을 벗어나 언제까지 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나이 들어간다는 건 나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꽤나 큰 의미를 가진다. 최근에 아버지가 무언가를 자주 잊고 까먹는 일들이 많았는데 과거라면 평소 원래 부주의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제는 나이가 먹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무얼 했는지 잊게 된다는 걸 나도 알게 되었다.

특히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데 영화에서도 큰 딸인 케이티와 둘째 딸이자 다른 딸들과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레이철의 관계에 항상 긴장감이 있는 걸 보면서 나와 아버지가 떠올랐다. 나와 아버지도 아마 그 비슷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처럼 되기를 바랬던 거 같고 그런 아버지의 기대를 가볍게 무시하던 나는 절대 아버지처럼은 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직업을 그대로 하기를 바랬으나 나는 그럴 의도나 마음도 없었고 무엇보다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그 직업이 절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자가 될 마음도 능력도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가난하게 살 게 확실한 그 직업에 대해서도 크게 마음이 가지는 않았다. 아마 이것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게 아니었을까. 그 이후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에 맞게 내가 변화하기를 바래왔고 어느 정도 강요도 해왔으나 나는 한 번도 그러한 바램에 대해서 제대로 응답한 적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는 늙고 병들었다. 나는 그 즈음에 잠시 부모님과 다시 살게 되었는데 병들고 늙은 아버지를 보는 것도 신경이 쓰였으나 아버지의 생활 습관이나 행동 때문에 병이 들었다고 생각하여 가뜩이나 암으로 힘든 아버지에게 모진 말을 내뱉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이 있는 거 자체가 서로에게 스트레스였을 텐데 둘 다 서로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상처를 주는 말을 끝없이 해온 거 같다. 마치 케이티가 레이철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듯이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처럼 말이다. 초반에는 케이티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으나 나도 아버지에게 케이티 처럼 행동한 적이 있던 터라 바로 거울 치료가 되는 효과가 있더라. 

이제 어느 정도 포기 하긴 했으나 나는 이제 사람을 바귀기를 기대하는 게 얼마나 오만하고 건방진 생각인지 알 정도의 나이는 되었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말이다. 사람은 타고난 형질이 있는데 특히 모든 걸 통제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걸 놓아 버리기가 너무나 힘들다. 케이티가 딸 트레이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건 케이티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케이티가 잘못된 건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 한다. 케이티 같은 사람도 있고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케이티같은 통제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크리스티나 역시 완벽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혼자 부단히 노력한 인물이다. 

무너지지 않을 거 같은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으나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사람인지 자매 앞에서 감추기는 어렵다. 나도 다른 사람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불평 불만을 잘 하지 않기에 크리스티나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했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나 그게 참 어렵다 싶을 때가 많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와장창 유리 그릇이 깨지는 거 같아 보이는 관계여도 이 세 명은 분명 서로를 사랑한다.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건 큰 문제가 되질 않는다. 이렇게 서로에게 기대하고 지적질을 하고 악다구니를 하는 거 자체가 어느 정도 애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애정이 있는 근간에서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한다. 지나가는 김아무개에게 갑자기 화를 내거나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건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아버지가 기운을 차린 터라 죽기 전에 반짝 저런 건가 싶었는데 역시나 아버지의 판타지였다.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보러온 딸들이 허구헌날 싸우기만 하니 남겨진 세 딸들을 위해 어떠한 말을 하고 싶었을 테고 그러한 말을 쏟아내고 싶었을 텐데 결국 하지 못 했다. 하지만 세 딸들은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지 마음 속 깊이 알고는 있다. 

사람은 모두를 이해하지 못 한다.

나 스스로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기 일쑤인데 남을 이해한다는 가정 자체가 엄청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핏줄이라고 해도 아무리 오랜 기간 함께 했다고 해도 타인을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상대방이 가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건 모두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욕망이긴 하지만 애초에 가족이 아닌 관계에서는 자신이 받아 들일 수 있는 행동과 발언을 하는 상대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 사람의 언어 습관 그리고 행동과 태도는 성인이 된 이후라면 절대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걸 머리로는 알지만 실질적으로 이해하지는 못 하기에 가장 친한 사이에서도 싸우고 서운한 감정이 들기 마련이다. 이건 또 이것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애초에 싸워야 가족이고 그러면서 가족인 걸 확인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그동안 쌓아 왔던 아버지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이제 아버지는 몇 년 안에 돌아가실 거 같은 느낌이 들지만 어쩌면 나는 아직도 용서가 안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나에게 한 그 모든 모진 말들이 상처가 되어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잊으려고 해도 아버지도 그러한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뱉은 말은 주워 담기 어렵고 나의 기억력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 좋은 게 문제라면 문제다. 

내가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버지는 나에게 물리적인 폭력를 행사한 것도 아니기에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온갖 생각이 다 들면서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때도 있다. 그리고 나는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리고 내가 죽기 직전까지 아버지라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테다. 나는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화는 시작부터 날이 서 있었고 서로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이해하지 않을 거야 라는 태도 위에 세워진 누각이기에 금방 무너지고 대화는 순식간에 힘을 잃는다. 항상 그래왔기에 이제는 아버지나 나나 모든 걸 포기했다.

지금처럼 서로를 멀리서 보며 이해하는 척이라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한데 잘은 모르겠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세상에는 이해하지 못할 아니 이해하는 게 불가능한 관계가 있다는 걸 말이다. 어차피 아버지와 나의 가치관은 다르며 서로의 인생 경험도 다르다. 특히 본인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 막말로 비슷한 사람끼리는 가장 이해하고 터놓고 지내기가 더 어려운 거 같다. 

어린 시절에는 정말 인정하기 싫었지만 성격적으로는 아버지와 나는 참 비슷한 사람이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서로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테다.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결국 남는 건 사랑이다. 나는 아버지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열렬히 사랑하지도 않으나 아버지의 존재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칠 테고 아버지의 죽음이 나에게 얼마나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킬지도 알고는 있다. 

때때로 감사한다. 

보통 보면 부모를 일찍 여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적어도 자연스럽게 부모를 잃어도 무리가 아닐 만큼 부모님이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시기 때문이다. 나는 이거 자체로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 단순한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에게 커다란 울타리를 제공해 주었고 넉넉하지는 않으나 나는 그 안에서 최소한의 평안과 안정감을 느끼면서 자라왔다. 

그 부분에서는 감사하여 이건 부모님의 죽음 이후 더 뼈저리게 다가오지 않을까.

특히 아버지와 핏줄이 아닌 레이철이 아버지의 병든 모습을 보기조차 힘들어 하는 모습에 정말이지 공감을 아니할 수 없었다. 이미 자신 만의 가정을 이루어 정신없이 바쁜 다른 딸들과 달리 독립하지 않고 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아버지와 남다른 유대관계를 형성한 레이철이 아마 아버지에 대한 애정도는 가장 컸을 거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나저나 뉴욕 배경인데 내가 저 배경의 아파트를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몇 번이나 봐서 그런지 감회가 남다르다. 꽤나 상징적인 아파트인데 생각보다 저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는 뉴욕 배경 미국 영화들이 정말 많아서 나올 때마다 정말 반갑다. 

뉴욕을 다시 갈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가게 된다면 저 아파트 단지는 꼭 다시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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