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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추천 미싱 후기 결말

 넷플릭스 일본 영화 추천 미싱 후기 리뷰 결말 정보 

얼마 전만 해도 일본 영화는 한국보다 한 수 아래 라고 건방지게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영화는 만화를 실사화한 작품을 제외하면 별로 볼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제 영화제에서 오히려 우리 나라보다 더 경쟁 부문에 많은 작품을 출품하고 수상도 하는 건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영화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만하다. 일본 영화는 한국 영화처럼 제작비 거품이 잔뜩 들어간 영화도 거의 없고 거의 다 저예산으로 역대급 작품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미싱 역시 제작비를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영화가 주는 강렬함은 최근에 본 어떠한 영화보다 신선해서 영화를 다 본 지금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특히 일본 영화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후로도 하마구치 류스케 라는 젊은 거장이 나와서 새로운 장을 열고 있는데 국내는 봉준호나 박찬욱을 이을 만한 인재가 전혀 나오지 않고 있어서 미래가 참 걱정이 된다고나 할까. 이 리뷰 안에서 한국 영화 걱정하는 게 조금 말이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짧게 언급만 해보면, 한국 영화는 거대 배급사와 흥행에만 신경 쓰는 제작사가 콜라보를 이루면서 수준이 낮은 상업 영화들을 공장형으로 생산해 내고 있었고 이러한 영화들이 극장에서 흥행까지 하면서 악순화의 고리에 빠진 거라고 본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극장 가격도 올라가고 극장을 제외하고도 놀거리가 많아지면서 그야말로 떡락의 길을 가고 있는데 관객들이 이제 더 이상 영화를 안 본다기 보다는 정말 볼만한 그리고 보고 싶은 영화만 두 번 세번 보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애매한 상업 영화는 관객 50만도 넘기기 힘든 시장이 되었다. 이제 와서 한국 영화 산업 힘들다고 징징 거리지 말고 일본처럼 저예산으로 드라이브 마이 카 같은 걸작을 만들어내는 산업으로 변모하지 못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망하는 게 더 나아 보이긴 한다. 

영화 미싱은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모성애를 조금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제목처럼 영화는 아이를 찾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가 절대 아니다. 그보다는 어쩌다 보니 아이가 사라진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연쇄 작용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빌런이라고는 한 명도 나오지 않으나 집단 빌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를 제공해 주며 그 중에 나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이 영화가 제시하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사오리가 덕질하던 아이돌 그룹 가수의 2년만의 콘서트에 다녀오던 순간에 아이가 사라진 터라 아이가 사라진 이후 대중들은 엄마가 아이도 안 돌보고 콘서트나 돌아다니는 양아치로 몰아 가기 시작했으며 아이를 돌보다가 집으로 보낸 사오리의 남동생 역시 물적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납치범이 아니냐라는 프레임을 씌워 지속적으로 괴롭힌다. 

대중들에게 사실은 중요하지 않고 선동만이 남았으며 사실 만을 전해야 할 방송사 역시 시청률과 광고 완판만 생각하는 게 안타까운 현실인데 이러한 현실이 우리 나라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아 보면서 답답한 마음 한가득이었다. 특히 우리 나라는 여기에 정치까지 가세하는 터라 제대로 된 정보를 얻는 게 이제 거의 불가능한 지경인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파악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 되는 시대가 비로소 다가오고 있다. 

미우라는 아이가 사라진 상태이지만 아무도 미우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다. 사오리와 남편 그리고 사오리의 남동생을 제외하면 사람들의 관심은 미우라는 아이가 실종된 상태에만 관심이 있고, 이미 아이가 죽었다는 가정 하에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만 온 신경이 가 있다. 아무도 아이를 잃은 부모의 현재나 상태 그리고 감정에 대해서 공감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스나다라는 기자만이 이들에게 깊이 관여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나다는 일개 방송사 직원일 뿐 프레임을 정하는 위치가 아니기에 스나다가 취재한 내용은 대중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오히려 사태를 악화하는 도화선을 제공한다. 스나다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 대중들의 입맛만 다시게 만들 뿐이다. 

영화 미싱은 엄마 사오리 역할은 맡은 이시하라 사토미의 연기를 제외하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연기가 연출을 압도한다는 게 바로 이러한 느낌인데 드라마에서만 보던 배우 이미지가 있어서 이 정도로 혼신의 연기를 펼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는데 연기력 수준이 정말 대단해서 보면서 감탄에 감탄을 하게 만든다. 특히 장난 전화로 미우를 데리고 있다는 경찰서에 버선발로 달려 나가서 이게 장난 전화인 줄 알고 오열하며 오줌을 지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고 할 만하다. 

일본 영화는 가끔 다큐멘터리 같은 연출을 선호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시하라 사토미의 연기 덕분에 정말 아이를 잃은 엄마를 취재한 거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킬 정도다. 최근 들어 이 정도로 대단한 연기는 본 적이 없어 놔서 더 충격이었고 얼굴도 예쁜데 연기까지 잘 하니 감탄이 아니 나올 수가 없다. 특히 화장기가 전혀 없는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예쁜데 그 예쁜 얼굴로 피폐한 아이 잃은 어머니를 연기하는 게 또 납득이 되는 게 신기하긴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초반에는 사오리의 과도한 반응이 이해가 안 가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이성을 잃는 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내가 만약 저 상황이어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특히나 사오리의 남편마저 사오리를 어느 정도 원망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말은 하지 않으나 하필이면 콘서트에 다녀온 날 아이가 사라지다 보니 남편이 원망하는 것도 무리수는 아니지만 아무리 집까지 100미터 거리라고 해도 아이는 어느 순간이라도 사라질 수가 있다. 

우리 나라는 최근 들어 미아 실종 신고가 많이 없긴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금방 찾기 마련인데 그 이유가 바로 우리 나라는 자동차들이 거의 다 블랙박스가 되어 있고 도로에도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게 나름 일상인 데다가 사방에 cctv가 있어서 납치를 한다고 하더라도 금방 범인도 잡히고 아이도 찾기 마련인데 일본은 생각보다 불법 주차가 전혀 없고 블랙박스를 다는 게 일반적인 것도 아닌 데다가 우리나라처럼 사방에 카메라가 있는 환경도 아니어서 이런 일이 나름 비일비재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일본은 아날로그 사회여서 더 그러한 듯한데 뭐 그런 일은 차치하고라도 아이라는 존재는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사고를 치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아서 나도 보면서 사오리의 남동생이 아무리 짧은 거리라고는 하지만 도박장을 가려고 자신의 조카를 집까지 바래다주지 않은 건 조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까지라도 나 같은 경우는 집에 바래다줄 거 같은데 미우는 겨우 6살이 아니었나.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원망이 밑도 끝도 없고 이런 일에 대해서 책임론을 들먹이면 모두가 다치는 터라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라고 생각하며 대처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모두가 사오리처럼 반응하면 앞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에 일본 여행 가서 성인 한국인 남성이 실종이 된 사건이 있었고 그 일로 인해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였는데 지금도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면서 부모님의 마음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다큰 성인도 사라지는 마당에 아이가 사라지는 건 어찌 보면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고, 이런 일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그저 사오리네 가족이 운이 더럽게 없었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당사자라면 또 이렇게 쿨하게 넘어가는 게 세상 불가능해서 사오리의 역동적인 반응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리고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사오리도 이해가 가긴 하지만 미디어라는 게 그리고 대중이라는 게 얼마나 깊이가 없고 시류에 휩쓸리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애초에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현실일 테다. 

사오리네 가족의 고통을 바라보는 건 힘겨운 일이지만 영화가 묵직하게 나아가고 있고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포인트를 의외로 잘 잡아주고 있어서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이시하라 사토미가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려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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